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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Jan 15. 2017

정다운 만남

최강 한파가 불어닥친 토요일, 집에 초대한 커플 맞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신랑이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금은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는 동료 직원과 그 남편 분을 집에 초대했거든요. 술을 잘먹는 부부라는데 우리 부부는 술을 잘 먹지 않고.. 어쨌거나 밥을 한 상 먹은 후에 고기 안주를 하면 되겠지 싶어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았습니다.  


요즘 요리프로들을 보며 쌓인 지식이 좀 있으니 정성껏 적용해서 차려보고 싶었어요. 멸치육수는 멸치, 다시마, 새우를 넣고 5시간 우려주었, 된장찌개에 넣을 야채와 두부는 소금물에 미리 담가주었습니다. 부드럽고 폭신한 계란말이를 위해 계란은 체에 밭쳐 걸러내고, 묵은지김치밥에 쓰일 묵은지는 김장김치로 속성으로 만든게 시원치 않아 전날 친정에서 공수해왔답니다. 샐러드 채소는 미리 단촛물에 담가 아삭한 식감과 살균효과를 노렸지요. 한 번에 몇 가지 음식을 한 적은 잘 없으니 머리와 마음이 바쁘고, 제가 음식하는 동안 집을 치우기 시작한 신랑은 평소보다 아주 적극적인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초대, 자주 해야 하려나봐요. ;)


초대한 부부는 본가가 우리 아파트 옆 동이랍니다. 다시 말해 남편 분은 학교 다닐 때부터 결혼 이전까지 쭉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거고,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이 집에 없을 땐 시댁에 들어와 혼자 한 달을 살기도 하는 며느리라는군요. 게다가 남편 분의 사촌동생은 제 직장 지인이기도 하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아주 낯설지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은 흘러갔지요. 이 동네의 교통과 운동 프로그램, 회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 여행 이야기, 연애할 때와 지금의 이야기... 저희 신랑이 미용실에 갔는데 아줌마가 "어느 고등학교 다녀요?" 했다는 이야기나, 제 블로그 글이 마치 라디오 DJ가 읽어주는 글 같다며 따라 읽었을 땐 웃음이 빵빵 터지기도 했답니다.


부인은 귀엽고 상냥한 매력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귀염 섞인 말투에 선해 보이는 눈꼬리와 기분 좋은 웃음 소리, 신랑이 왜 친하게 지냈는지를 알겠다 싶은, 만나서 참 반가운 좋은 사람이었지요. 자꾸 와서 설거지를 하려는 통에 지저분한 부엌이 들킬까봐 질색팔색 하기도 했답니다. 크고 단단한 덩치에 부인을 아끼는 마음이 눈에 보이는 남편 분은 탤런트 조진웅을 꼭 닮아서(꽃중년 이전의 살찐 조진웅이라고 부인이 사진까지 찾아가며 부연해주었지만) 자꾸 눈앞에 있는 조진웅과 대화하는 기분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 난방이 말썽입니다. 얼마전 개별난방공사를 했으니 이제 손님 초대에도 끄떡 없겠다 싶었는데, 다른 방 밸브는 다 잠그고 거실만 열어놓은 밸브가 잘 작동이 안되는 것이죠. 조진웅 남편은 베란다 창가에 앉아서 등으로 바람을 맞을테고, 귀여운 부인은 털 상의를 양팔에 끼고 벗지 않고 있어서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다행히 신랑이 밸브를 다시 작동해 보았더니 뒤늦게 온기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홀짝거리는 맥주와 같이 눈 앞의 삼겹살과 딸기도 하나씩 없어져가고.. 사운드바에 연결해놓은 지니차트 Top100도 두 번을 돌아가고.. 돌이켜보니 벽난로 같은게 있어도 참 어울렸겠다 싶은 저녁이었네요.

부부가 돌아가고 난 뒤 시계를 본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새 5시간이 훌쩍 넘어 있더군요. 잠자리에 누워서 우리는 어이 없어 했지요. "이렇게 별거 아닌 얘기들을 하며 5시간이 가버릴 수 있는거야?!" 즐겁고 만족스런 만남에 건넸던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와, "같이 여행을 가도 좋겠어요" 하는 반가운 이야기를 떠올리며 잠자리에 들어봅니다. 이런 정다운 만남을 위해서 집을 좀더 자주 열어야겠어요. :)                 

*제목의 이미지는 저희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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