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내가 준비했던 아이디어 품앗이 플랫폼 서비스의 이름을 말하면 대뜸 돌아오는 질문이다. 익숙한 것을 낯선 것과 결합하여 친숙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고도의 네이밍 전략이다. 빵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빵집이 아니라 빵'잡'이라는 비틂을 통해 기억의 저장소에 넣을 단서를 한 가지 더 만든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웬 빵이냐. 그 매칭되지 않음을 이용해 버블을 일으키는 하나의 노이즈 마케팅이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맨 첫 줄에 노출되기도 한다.
왜 하필 '빵'이냐고?
브랜딩은 실체를 이미지와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실체라고 하는 것은 그 본질을 의미하기도 하고 본질이 구현되는 서비스에서 드러나야 한다.
1. 크라우드(대중)에 의해 순식간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응집되어 '빵'하고 폭발한다는 의미
2. 요리처럼 거창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실생활에 꼭 필요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우리의 일상 같은 재료. 생계를 위한 우리의 일들도 그렇게 빵처럼 꼭 필요한 재료로서 공급받기를 희망한다는 의미.
3. 빵잡에서 거래되는 포인트의 명칭.
1)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무조건 얻게 되는 '빵 포인트'
2) 우수한 아이디어로 선정된 제안에 대해서 지급되는 '대빵 포인트'
3) 기준 미달의 안에 대한 제재를 목적으로 표기되는 '낙빵 포인트'
4) 우수한 안이 없을 때 우수한 안에 지급될 대빵 포인트를 참여한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 지급하는 'N빵 포인트'
의미와 실체로 연상되는 '빵'이라는 키워드를 사이트의 주요 서비스인 ‘일' 'Task' 'job'과 결합하여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게함은 물론 쉽고 재미있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만든 이름.
그것이 '빵잡'이었다.
스마트폰이 출현하고 산업과 트렌드가 크게 요동칠 무렵, 회사에서 열심히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던 나는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함께 부상하는 '크라우드소싱'에 주목했고 '크몽' '라우드소싱' 등 일의 프로세스와 조직이 세분화하고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변화에서 기회를 보았다.
처음부터 '아이디어 품앗이 플랫폼'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내가 속하고 있는 업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보다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었다.
많은 자원을 투여하거나 대대적인 투자를 받을 역량도 부족했던 나는 사이트 기획과 함께 꾸역꾸역 코딩을 배워 프런트엔드 작업을 전담하면서 거북이걸음으로 진행해 나갔다.
그것이 나의 패착이었다. 그 사이 '숨고' '긱톡' '동네알바' 등 크라우드소싱을 파고드는 개인 밀착 서비스들이 파죽지세로 생성되고 성장해 갔다. 비슷한 경쟁 서비스와 차별화하고 빵잡만의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이트를 몇 번이고 뒤집고 갈아엎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고 그럴수록 또 다른 서비스가 부상했다.
'빵잡'이 그들과 똑같은 서비스라고 보지는 않는다. 만약 제대로 빠른 시간에 완성되고 사업화되어 시장에서 테스트를 받으며 개선되어 나갔다면 또 다른 좋은 서비스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디어만 가지고 사업은 되지 않는다. 적절한 타이밍과 역량, 속도가 관건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무언가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작게 만들어서 수없이 시장에 던져봤어야 했다는 것. 그것이 빵잡과의 여정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다시 천지가 개벽했다. 이제 유용하리라고 여겼던 '빵잡'의 기능은 고쳐 써먹을 수도 없을 만큼 세상은 성큼 다른 우주로 날아가고 있다. 빵잡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빵잡이 세상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 보지도 못하고 사그라져갔지만 빵잡을 준비하면서 얻은 교훈과 경험은 나 개인에게는 유용하였으며 성숙한 인간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시니어분들, 열정과 패기로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애쓰고 있는 청년분들, AI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신 분들, 개인 브랜드로서 성장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과 나눌만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우주만큼 광활한 온라인의 어느 한구석에 잠자고 있을 빵잡을 추모하며-
비록 세상에 태어나 드러나지 못하고 묻혔지만, 나에게는 온라인 플랫폼의 형태가 아닌 부푼 꿈, 열정, 희망, 좌절, 절망, 인내, 기쁨, 배움, 스승이라는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