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스마트폰, 플랫폼 비즈니스 그리고 크라우드소싱
“이사님, crowdspring이라고 아세요?“
평소 브랜드나 비즈니스 이슈를 곧잘 전해주던 직장 동료가 그날도 해외에서 성업 중인 디자인 중계 사이트를 소개했다. 브랜드 에이전시에서 전략기획부서를 총괄하고 있던 나는 월 최소 3개 이상의 제안 프로젝트와 10여 개의 본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며 각종 보고서와 제안서, 업체 미팅 스케줄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래된 업무에서 오는 권태, 숨 쉴 틈 없는 빡빡한 일정에서 오는 피로 누적, 업체의 관행에 대한 염증…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장 변화와 트렌드 흐름에 민감한 데다 뭔가 새로운 활력과 돌파구를 찾아 이런저런 사업기회와 아이템을 탐색하고 있던 차였기에 새로운 비즈니스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디자인을 원하는 의뢰자가 콘테스트를 열면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안을 제시하고 우승하면 상금을 갖는 디자인 중개 서비스인데 지금 엄청 잘나가나 봐요."
쉽게 말해 공모전 사이트라는 건데 공모전을 온라인에서 쉽고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해 놓으니 이용자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브랜딩 에이전시를 위협할 수도 있겠는데?
당시는 스마트폰의 출현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컴퓨터를 통째로 폰으로 옮겨 온 혁신에 술렁이며 너도 나도 변화를 예측하고 발 빠르게 대비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각종 앱이 출시되면서 개개인이 모두 손안에 자신만의 오피스를 갖게 되었고 단순히 업무환경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변화가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시장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더욱 빠르게 재편되었다. 유통회사들이 앱을 출시하면서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차 안에서 쇼핑을 했다. 영화, 음악, 책 등 문화 소비도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해졌다. 넷플릭스 등의 OTT 플랫폼, 배달 앱 등도 덩치를 키워갔다.
돌이켜 보니 이제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지. 흡사 AI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처럼 말이다.
온라인의 위력은 스마트폰 출현 이전에도 이미 주지의 사실이었다. 빨간 클립 하나로 시작한 온라인 중고거래로 집 한 채를 얻었다는 '빨간 클립 한 개' 이야기라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요리 블로거, 여행 블로거의 부상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그런 현상을 더욱 촉진하고 확대시켜갈 것이 자명했으며 개인이라도 이제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을 대상으로,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펼쳐볼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 ‘크라우드소싱’이었다. 말 그대로 대중에게서 재료를 얻는다는 개념이다. 다양성과 차별화의 가치는 산업이 발전할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소수의 전문화된 조직들에 의해 비싼 값을 치르고 얻는 아웃풋은 그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반면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재능도 경험도 다양한 수많은 대중에 의해 이질적인 것들이 섞이고 융합되어 예상치 못한 창조성이 발휘되고 온라인과 스마트폰이 그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다수의 인력풀은 소수의 전문가보다 낫다"
제프 하우는 책 '크라우드소싱'에서 대중의 집단지성에 주목했다. 폐쇄적인 연구개발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P&G가 '개방'을 모토로 연구인력을 외부로 확대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는 사례, 숨어 있는 인재를 활용해 거대 기업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어내는 지식중개 기업 이노센티브. 오픈소스 프로그램 리눅스,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까지. 디자인, 경영, 마케팅, 유통, 언론, 경제, 정치, 엔지니어링, IT, 순수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성, 비전문성, 다수라는 크라우드의 속성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혁신하고 새로운 진보를 이끌어내는지 제시한다.
조직보다 강한 대중, 그 동안의 틀에 박힌 경영방식과 생각의 방식을 뛰어넘는 집단 지성의 힘! 너무 멋지지 않은가!
더우기 에이전시라는 한정된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항상 창의성의 고갈과 클라이언트 수급의 한정성에 아쉬워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던 나에게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해법이 아닐 수 없었다.
크라우드소싱이 복잡한 조직의 절차와 한계를 넘어 단순한 프로세스로 빠른 시간에 엄청난 양의 결과물을, 그것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온라인이 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해법이 될 것이었다.
또한 점점 강력해지는 온라인 생태계를 통해 향후 조직보다는 개인들의 비중이 확대되고 개인과 개인이 네트워크로 거미줄처럼 얽히고 연결되어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점과 1인 기업, 프리랜서의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나의 전망과도 부합했다. 그 수많은 개인들에게 플랫폼이라는 것은 필수불가결의 도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
가슴이 뛰었다. 전도유망한, 향후의 트렌드에 부응하는, 지속 가능하면서도 꼭 필요한 사업을 하고 싶었던 내게는 큰 틀에서 맞는 방향이었다. 내가 도전해 볼 비즈니스가 확실해지자 의욕이 불타올랐다.
한번 해보자! 할 수 있다!
빵잡의 기나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