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Spec Work에 선전포고를!
알면 알수록 더 잘 보인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깊이 들어가면 문제점이 보이고 고비가 찾아온다. 알기 때문에 할 말이 많고 흠도 더 많이 보이는 법이다.
세스 고딘이 말한 ‘더 딥(the dip)’이란 그런 것일까. 누군가는 그 ’딥‘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또 누군가는 그 딥을 통해 도약할 방법을 찾아낸다.
10여 년 전의 나도 내가 속한 업계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표적인 클라이언트-에이전트 형태의 비즈니스인 브랜딩 회사.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장거리 업체 미팅은 물론 입찰을 위해 몇 주를 준비하지만 선정되지 못하면 제안은 클라이언트에게 참고자료로 활용될 뿐이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서 클라이언트들은 진행하지도 않을 프로젝트를 발주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갑을 관계에서의 ‘을’인 에이전시들은 클라이언트를 유지하기 위해 끌려다닌다.
제조업이나 다른 여러 산업에서도 갑을관계의 문제점은 불거져 나오지만 에이전시의 경우, 제공하는 노동이 산술적으로 전혀 계산될 수 없고 계산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결국 회사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수주되는 프로젝트에 전가될 수밖에 없으므로 프로젝트 단가는 상승한다.
그런 오프라인 에이전시의 문제점을 온라인에서 해결했다고는 하지만 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클라이언트-에이전시의 불평등 구조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Spec Work’라는 통칭으로 더욱 고착화, 확산되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crowdspring’이나 ’LOUD’ 같은 디자인 공모전 사이트의 경우, 일부 우승자에게만 상금이 주어지고 수많은 참여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Spec Work에 반대하고 프리랜서의 권익을 주장하는 안티 사이트들(andrewhy.de, Design Is a Job, Mike Monteiro’s talk “F*** You, Pay Me”)과 조직(NO!SPEC, AIGA’s Position on Spec Work)에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Say No to Spec Work! The Dark Side of Design)
콘테스트형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은 클라이언트에게는 더없이 좋은 플랫폼 - 적은 비용으로 많은 안을 받아 볼 수 있다.- 이었지만 프리랜서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전형적인 승자 독식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크라우드소싱이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이익을 위해서만 작동하고 대다수의 ’크라우드‘들에겐 아무런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해서,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와 재능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시스템이라면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지 않은가.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봐도 오프라인의 문제는 온라인에서 이어졌다.
크몽과 같은 재능마켓이라든지 IT를 전문으로 하는 위시캣을 활용한다 해도 업체를 선정하기까지 많은 포트폴리오와 제안을 검토해야 하고 한 번 업체를 선정하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끝까지 함께 가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다.
“내가 해결해 보겠어!”
굳은 결의와 함께 누구보다 호기롭게 회사를 뛰쳐나왔다. 준비된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조직을 벗어날 수 있는 합리적 이유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일‘을 하겠다!‘
그렇게 나는 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빛나는 나의 미래를 호언장담하며 스스로를 멋지다고 칭찬하고 있었다.
* Spec Work(Speculative work) : 스펙 워크라고도 알려진 투기 작업은 공정하거나 합리적인 비용이 서면으로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원 봉사자 디자이너가 예비 고객에게 완료하거나 제출한 모든 종류의 창의적인 작업이다. 디자이너들은 계약을 따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관행은 예술 및 건축과 같은 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투기 작업의 한 예인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고객은 참가 디자이너에게 최종 우승자에게 간단한 상을 제공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객이 우승 제출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작업을 제출할 것이다. 우승자가 상금과 계약을 받으면서, 다른 참가자들은 그들의 일에 대해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