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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수용 Nov 13. 2024

아이디어를 도둑맞았다.

5화. 스타트업 실패의 정석-1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모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겠다.

1. 사업기획

2. 투자자 모집

3. MVP* 테스트 / 베타 테스트

4. 지속적 투자유치 및 개발 (시리즈 A, B, C…)

5. 엑시트(Exit)


여기서 핵심적인 점은 무엇인가?

첫 번째, 초기 테스트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일단 투자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빠른 시간에 성장한다.


이런 투자의 정석이 기발한 사업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사업 초반에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업계를 바꿔보겠다는 들뜬 기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그때는 다른 것들은 그저 ‘그러면 더 좋다’ 정도의 훈수로만 치부했던 것 같다.



이제부터 이런 정석과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나의 여정을 들려드리겠다.


1. 구상한 플랫폼 기획을 가급적 최대한 완성된 형태로 출시한다.

2. 최대한 보안을 유지하며 '우리끼리' 비밀리에 개발한다.


그렇게 바보같이 접근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여기 있다.

돌아보니 너무 부끄러워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다만 누군가 나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충심으로 말씀드리기로 하였으니 답답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세상에 없는 것

조직을 싫어하는 태생적 특성에서 파생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슨 일을 하든, 옷을 입든, 말을 하든 조금이라도 남들과는 달라지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 습성이 아니었다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잘 만들어진 플랫폼을 외관만 변형하여 론칭시킨다거나 브랜드만 갈아 끼워 서비스를 시작했을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의 사업체가 성공하면 그와 비슷한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많이 본다.

이미 검증된 수익모델을 따라 비슷한 서비스를 만든다면 개발에 필요한 많은 인력과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바로 현금흐름을 창조할 수 있다는 면에서 큰 장점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업체를 일구어가긴 싫었다. 남의 것을 따라 한다는 것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차별화라는 것은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건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제까지 없었던,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음모론

내가 빨간 옷을 사면 그때부터 빨간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유독 많아진다. 내가 방문하는 가게에는 그때부터 손님들이 들이닥치고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은 희한하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실 것이다.


정부지원 사업 'G-창업'에 선정되어 개발에 착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기획안과 비슷한 서비스들이 출시되었던 것을 기점으로 아이디어 공개에 대한 공포감은 더욱 깊어졌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누군가에게 투자 받기 위해 제안하는 순간 우리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자본가는 더 훌륭한 개발자에게 일을 맡겨 개발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불신에 휩싸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그때부터 그 아이디어를 구현한 사업이나 아이템들이 나타났다. 내 아이디어가 이렇게 빠르게 퍼져나가는 걸까? 누군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근거가 있다.

인간의 선택적 주의를 설명하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그것이다. 인간의 뇌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결국 자신이 관심 있는 특정 대상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게 되며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것도 결국은 모두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https://youtu.be/5125PFt_TwA?si=RG2yj_fDaMz9UkVN


그렇게 놓고 보면 내가 발견하게 된 많은 것들은 이미 존재했으나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없던’ 것이었다가 내가 주의를 기울이면서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무엇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슷한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되고 비슷한 해결책을 내놓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둘만의 비밀작전

지적재산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도 있었다.

컨설팅 보고서, 브랜딩 기획서 하나도 최대한 나만의 고민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 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보고서와 문건들이 다른 회사 프레젠테이션 화면에서 나타날 때도 있고  기획서 판매 플랫폼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기도 했다.

직장 동료가 이직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활용했을 수 있다. 한마디로 회사 내에서 작성된 내 보고서들은 그저 공유 자산일 뿐이었던 것이다.

블로그에 쓴 나의 글이 어느 누군가의 블로그에 출처도 없이 게시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요새는 그나마 긁어가는 것이 쉽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지를 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게시자에게 항의를 해봤자 별 소용이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지적 노동이 순식간에 도용될 수 있고 마땅히 대처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와 개발을 같이 한 파트너는 다름 아닌 우리 남편이다.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던 남편은 평소 업계에 대한 나의 토로에 깊이 공감했으며 디지털 노마드라는 핑크빛 미래에 대한 비전에도 함께 들떴다.

프로그래머와 기획자, 자기 분야에서 한참 자신감에 충만했던 우리에게 플랫폼을 하나 뚝딱 만드는 건 무척 쉬워 보였다.

그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나도, 남편도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동시에 호기롭게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도 투자유치 쪽으로 관심을 끊게 된 큰 요인이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자.

180도 다른 성격으로 매번 의견 충돌이 잦은 우리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엉뚱한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죽이 착착 맞았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누군가 물어보면 '사이트 만든다'고 두리뭉실하게 둘러댔고 모두를 깜짝 놀래킬 그날을 떠올리며 의기양양해했다.

그렇게 우리는 둘만의 비밀 작전을 펼쳐갔다.



실패의 가장 근본적, 절대적 원인

너무 방대한 것을 기획했고 단 2인이 개발했다는 것. 우리 사업의 실패 원인을 말하라면 한마디로 이것이다.

1인 또는 소수가 무언가 하려고 했다면 더 작은 사이즈였어야 했다.

몇 년을 개발에 매달린 후에야 이것을 깨닫고 모두 덜어내려고 기존 만들었던 것을 엎어버리고 새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한 해 한 해 시간이 갔다. 만드는 속도는 더디고 세상은 너무 빨리 변했다.

동업자 한두 명과 시작해서 IT 혁신을 일궈낸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천재들의 성공담을 너무 신봉했던 탓일까.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다. 평범한 개인의 접근 방식은 출발부터 달라야 했다.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이하 MVP) : MVP(Minimum Viable Product)는 스타트업이 제품의 가장 중요한 기능에 집중하여 개발하는 초기 모델. 이는 고객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여 시장 반응을 빠르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MVP의 주요 목적은 제한된 자원 내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에서 제품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출처 : https://brunch.co.kr/@dongdong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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