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스타트업 실패의 정석-3
코딩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내가 쓰려는 내용이 어떤 것일지 제목만 보고 아실 듯하다.
어떤 분은 코딩이 웬 지옥? 이라며 일갈하실 수도 있겠다. 그 점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메뉴가 생기고 내가 원하는 대로 모양을 갖춰가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원하는 대로 착착 검색될 때는 너무 신이 났다. 다른 사이트에서 멋지고 탐나는 기능이나 버튼이 있으면 날름 집어넣었다.
디스플레이 형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반응형으로 개발하는 데 공을 들였더니 더 그럴싸했다.
코딩 공부는 책 한 권과 W3 school과 같은 사이트의 도움을 받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검색을 통해서 쉽게 해결했다.
웬만한 기능과 디자인 아이템도 인터넷에 있는 템플릿을 이용하여 약간의 변형을 통해 적용해 나갔다.
초기 1~2년 간은 그랬다.
조금 할 줄 알고 보니 우리 사이트의 허접함이 눈에 들어왔다. 웹/앱들의 수준이 날로 높아진 탓도 있다.
이 기능도 있어야 하고 저 기능도 있어야 하고. 새로 생기는 수많은 웹/앱들의 기능과 디자인을 쫓아가느라 많은 시간을 매달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연결되어 있던 프로그램들의 버전이 업그레이되어 다시 전체를 들여다 봐야 했다.
다양한 타입의 설문 페이지와 회원들의 각종 통계 데이타까지. 이 정도는 최소한이지 하며 집어넣은 기능들 때문에 사이트는 점점 복잡해졌다.
영화에서 보면 천재해커들이나 프로그래머가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 코드를 풀고 순식간에 뭔가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흔히 본다. 남들이 하는 건 쉬워 보였다. 그러나 글자 입력 하나, 숫자 하나, 작은 효과 하나도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주알고주알 다 지정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머릿속 그림은 그게 아닌데, 한 페이지 만드는 시간은 더디기만 하고 에러는 왜 그렇게 많이 생기는지.
아무리 찾아도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 문제도 점차 늘어갔다. 검색하고 적용해 보고 또 검색하고 적용하고. 이 모든 것이 무한 반복된다.
끝나지 않는 에러.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찾지 못하는 날에는 괴로움에 잠 못 들었다.
내가 작업해서 넘기면 남편이 백엔드에서 데이터베이스와 연동시키고 모든 동작이 일어나도록 작업했다.
남들 사이트에서는 잘 되는데 우리는 왜 안되는데!! 볼멘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시간이 걸릴수록 짜증만 늘었다.
내가 구현하고 싶은 기능이 백엔드 프로그램에서 구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하나 둘 포기해야 하는 것에도 지쳐갔다.
온라인 플랫폼을 만든다는 게 이런 건 줄 몰랐다. 애초에 나는 기획이나 디자인 정도만 하고 다 만들어진 후에는 마케팅과 운영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외관에 해당하는 프런트엔드 작업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코딩은 주 업무가 되었다.
코딩은 정밀함과 꼼꼼함이 필수다. 단순한 웹사이트 만드는 정도는 재미로 가능하다. 호기심이 많고 신기술 배우는 걸 좋아했던 나였기에 초반에는 할만 했다. 하지만 기본이 탄탄하지 않았던 사이트는 여러 가지 기능이 첨부되자 알 수 없는 오류를 일으키기 일쑤였고 얼기설기 만들어진 허점을 찾아 메우는 것만으로도 일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재미가 없어졌다.
이걸 앞으로 언제까지 해야 하나.
꼼꼼하고 치밀한 남편은 그나마 나와는 달랐다. 끈질기게 프로그램을 만들어냈고 지겨워하는 내색도 없었다. 그러나 허구한 날 모니터 앞에서 코딩과 씨름하는 남편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고 힘이 들었다. 끝도 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만 같은 무한의 공포는 나를 엄습했다..
원래가 한 번 본 영화는 두 번 보지 않고 반복되는 소리에도 기겁하는 나란 사람이 완전무결을 위한 기계적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것 자체가 지옥 같았다.
코딩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래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플랫폼만 다 만들어지면 영영 쳐자보지도 않을 것이다. 속으로 다짐했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조금만 하고 그만하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그 분야의 일을 사업으로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다.
온갖 기호와 알파벳이 형형색색 빽빽하게 들어찬 모니터를 매일 즐겁게 들여다보며 씨름할 수 있는 사람만이 견딜 수 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지옥 같은 상황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적성에 맞더라도 어떤 성과나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에너지를 쏟아붓기란 힘든 일일 텐데 말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그냥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워 아무 보상도 없지만 어떤 일을 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 분들에게는 자신의 즐거움, 기쁨, 만족이 이미 성과이고 보상일 것이다.
사이트를 만든 내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모든 분야 모든 일에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와 잘 맞는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더 잘할 수 있는데 내가 올인하지 못하는 데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결국 본인의 성격과 적성은 하고 있는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모든 일은 깊이 들어가면 힘든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성격과 적성에 맞는 일인지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나마 적성에 맞다면 수렁에 빠졌을 때 빠져나올 힘이 있을 것이다.
빵잡 실패의 세 번째 원인으로 ‘적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