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그래도 조금 겁을 먹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무작정 덤비는 건 나의 고질병이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견기업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다 디자인 공부를 다시 했고 브랜딩 업계에서는 마케팅을 파고들었다.
생계와 학업을 스스로 책임지며 투철한 생존력으로 버터 낸 원조 88만 원 세대이자 며칠씩 밤새는 것쯤은 일도 아닌 타고난 체력의 소유자.
마음 먹으면 세상에 못할 것이 어디있겠냐는 자신감과 투지. 돈? 좀 덜 벌면 어때? 더 크게 성공하면 되지! 안 자고 안 쓰고 안 놀고 노력하면 금방 될 거야!
몸에 밴 헝그리정신은 ‘겁 없음’의 일등공신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온라인 사이트? 그 까잇거! 대학 때 간단한 과제로 웹사이트 만들어 본 것 말고는 IT ‘잘알못‘인 주제에 그냥 책 좀 보고 뚝딱뚝딱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자만이 하늘을 찔렀고 혼자서 앱을 만들었다는 주변의 이야기들은 안 그래도 불붙은 나의 포부에 기름을 붓기에 충분했다.
세상을 알만큼 알지만 아는 만큼의 권태와 무게감이 혼재하는 나이. 현재의 안정과 미래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서성이고 자신이 선택했던 것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동시에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에 대한 이끌림에도 눈을 떼지 못한다. 이루지 못한 꿈은 여전히 목에 걸린 가시처럼 문득문득 평온한 일상을 파고든다.
그렇다. 나는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한 겁 없는 40대였다. 예상들 하셨겠지만 이 조합이 초래한 결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20대의 ‘헝그리’와 40대의 ’헝그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체력은 예전만 못했고 비교적 안정적 삶을 영위하는 40대 커뮤니티에서는 소외감과 열등감이 따라붙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공급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면 앞서 언급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40대의 헝그리는 말 못 할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다.
진중하게 한 길을 가지 못했던 나를 탓하고 부족한 인간으로 치부하며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댄 것도 사실이다.
그런 자기 비하와 후회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고 스스로를 상하게 했다.
그렇게 나의 40대는 지나갔고 50대가 되었다.
만약 다시 처음 빵잡을 시작하려 했던 40대 초반의 나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런 나를 받아들인다. 겁 없이 용감한 나의 본성,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당시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한다. 미워하지 않는다.
가장 현명하고 옳은 선택을 하지는 못했던 나. 더 지혜롭지 못했던 나. 40대였지만 꿈을 꾸었던 나. 잘해보려고 노력했던 나. 그 모든 것이 나의 모습이다.
앞서 세 편의 글을 통해 스타트업 실패의 원인으로 ’폐쇄성, 역량, 적성’을 말했다. 40대의 나이라는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포함시켜야 할까?
40대 50대에는 무언가에 도전하면 안 된다고 단정하는 게 맞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모든 일은 여러 가지 복합요인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발생한다. 행운도 불행도 그렇다.
나라는 성격의 사람이 특정한 경험에 의해 별난 신념과 자만심이 결합되어 그것도 40대에 시작했기 때문에 실패했던 거다.
어정쩡하지만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 40대를 응원한다.
다만 조금 더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명확한 현실감각을 가지고 노련미와 지혜를 곁들이길 충심으로 바라본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계시다면 올인하지 마시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양다리를 걸치면서 시작해 보시길 강력히 권장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