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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수용 Nov 07. 2024

사실은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었습니다.

4화. 나의 로망, 비전, 로드맵


'나는 4시간만 일한다' 팀 페리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설레고 혹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여 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원하는 인생을 산다는 파이어족. 이런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다른 이유로 나는 더 절실했다.



태생적 자유인

나는 ‘조직’을 매우 싫어한다. 개인의 개성이나 취향, 가치보다는 정해진 틀 안에서 주어진 역할에 맞춘 캐릭터로 움직이기를 요구하는 모든 형태에 본질적 거부감이 있다.

꿀벌이나 개미 사회에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나를 어머니와 유치원 원장님은 잡아 끄셨다. 대성통곡을 하며 방문틀을 붙잡고 버티는 통에 어른들은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으셨다.

모태신앙인 이유로 습관처럼 다녔던 교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 학교는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야자 시간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우리는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든지 ‘현 입시제도의 문제점’같은 장문의 글을 써 돌리며 동참을 호소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큰 일탈 없이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했고 대학을 두 개나 나왔다.

그런 탓에 아직까지도 어떤 밤이면 50이 넘은 나이에 대학에 세 번째로 입학해서 괴로워하는 악몽을 꾸곤 한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그것도 열심히 한다는 것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만도 하다.


회사라는 조직은 속박의 정점이다.

직급, 성별, 짬밥, 갑을관계, 상하관계, 미혼기혼, 외모, 취향, 자녀유무, 학벌, 흙수저금수저, 출생지, 사는 곳….

나를 규정하고 얽매는 기준이 그렇게도 다양하고 촘촘할 수가 없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분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회사가 군대처럼 살벌하고 숨 막히는 곳이었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했고 임무를 완수했다. 언젠가는 이 지옥을 탈출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하고 일하며 버텨냈다.

탈옥의 날만을 준비하는 죄수처럼.



“너의 회사를 가져라”

축협 공무원으로 우리나라 축산업을 위해 평생을 청렴하게 헌신하셨던 아버지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큰 사고를 당하셨고 하루아침에 우리 집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 후 어떤 사업가를 도와 회사를 설립하셨고 나름 건실한 기업을 일구셨지만 성공의 대가는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뒤늦게 스스로의 자본과 이름으로 사업체를 일구어 보려고 이것저것 손을 대셨지만 모두 큰 성과는 없었다.


공부해서 고위 공직자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만이 최고의 길이라고 강조하셨던 아버지는 어느새 작더라도 자기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무척 호의적인 사람이 되셨다.


디자인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디자인 회사를 잠깐 차린 적이 있다. 회사라기보다는 프리랜서에 가까웠지만 근육이 다 빠진 허약한 모습으로 사무실 집기를 실어 날라 주시면서 아버지는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하셨는지..


평생을 남을 위해 일한 결과에 한이 맺힌 아버지의 바람에 부응하고 싶었다.

나는 남 밑에서 일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꼭 성공하겠다고.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런 이유로 '내 회사를 갖는다'는 것은 자유를 갈망했던 나의 오랜 숙원이자 아버지의 삶을 통해 뼈저리게 각인된 미션이었다.



원대한 비전과 로드맵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비전을 들여다보고 설계해 온 탓에 무슨 일을 함에 있어 비전을 수립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체성과 비전은 목표와 방향을 잃지 않고 때마다 올바른 선택을 하며 에너지를 한 곳으로 집중시켜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 이정표다.


그렇긴 하지만 실체와 역량에 걸맞지 않은 두리뭉실한 비전이란 허상 또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라는 통찰을 그 때는 하지 못했다.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이 지상 최대의 명제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모두가 최고, 최상의 가치를 앞다투어 내세운다. ’No.1 유통 강자‘ ’Global Health Care Company’ ‘the Energy Leader’… 이런 식의 비전을 많이도 보았고 직접 수립해 주기도 했었다.


내 사업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에이전시 업계의 정의 실현’ ‘공정한 가치 분배를 위한 플랫폼‘ ’프리랜서, 1인기업의 No. 1 파트너‘…

나 또한 기존 업계의 문제점을 혁신하는 차별화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전략적인, 무엇보다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수다.

1년 차, 3년 차, 5년 차에 해당하는 성장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고 단계별 목표, 브랜딩 전략, 커뮤니케이션 실행계획까지 세부적인 사항을 정리한다. 역시나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하는 식의 거창한 보고서 한 부가 완성되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일에서는 손을 떼고 따뜻한 휴양지 파라솔 아래서 노트북을 두들기겠다는 목적과 간단한 업무처리만으로도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마음속 비전은 살짝 숨겨둔 채 말이다.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만으로 벅차올랐다.

벌써 마음은 업계의 환호와 풍요로운 생활, 늙어 죽을 때까지 돈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는 안정감에 취했고 성공과 자유에 대한 욕망은 그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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