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감독을 봄니다.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있는 게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 by 영화 <미나리> 中
확장이라는 실험
2021년은 전쟁 같은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이었다. 국민들은 거리 두기로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고, 영화계를 포함한 모든 경제지표는 바퀴 빠진 마차처럼 멈춰 섰다. 춘사영화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봄 개최는 언감생심이었고, 여름 개최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개최 일정을 몇 번이나 연기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멈춰 있을 때가 변할 때다.
크게 2가지의 변화를 기획했다. 첫째, 코로나19로 바뀐 관객의 시청습관을 영화제에 반영하는 일. 당시 극장의 관객수는 급감했고, 이와 때를 맞춰 국내외 OTT 플랫폼은 다양한 오리지널 영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극장용으로 제작된 대작 영화들도 앞다투어 스트리밍 개봉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후보작에 OTT 오리지널 영화를 포함시키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국내 시상식 중 최초였다.
둘째, 국제영화제로의 확장을 도모해야 했다.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이후 한국영화의 위상은 급격하게 높아졌다. 국제 시상식에서 한국영화는 꾸준히 선전했고, 오징어게임으로 촉발된 한국 콘텐츠의 인기는 숫자와 지표로 증명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들면 세계가 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영화제의 명칭에 국제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그렇게 <춘사 월드 어워즈>가 신설됐다.
鶴
원더풀한 이야기
춘사 월드 어워즈는 심사위원이 결정하는 본상이 아닌 집행위원회가 결정하는 특별상이다. 한국 감독의 시선으로 해외 감독에게 시상하는 특별한 트로피였다. 첫 단추가 중요했다. 한국영화감독협회의 집행부는 첫 번째 춘사 월드 어워즈의 수상자로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을 선택했다. 영화는 같은 해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었다.
미나리는 어느 한국 이민 가족의 원더풀한 이야기다.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제이콥의 가족. 영화는 어디서든 자라는 미나리처럼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보여준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정이삭 감독의 가족이 애틀랜타에 살다가 아칸소 주 링컨의 조그만 시골 농장으로 이사한 실재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다.
정이삭 감독은 예일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유타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전공하며 영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첫 장편 영화 <문유랑가보>로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부모님의 강인함에 경의를 표하고, 나의 딸에게 선물이 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머무는 순간을 반영하는 동시에 초월하기를 바란다"라고 미나리를 제작한 소회를 밝혔다.
한국보다 한국다운
미나리에 참여한 배우들은 유독 춘사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영화 미나리의 주연을 맡은 배우 스티븐 연은 영화 <버닝>으로 24회 춘사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미나리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른 윤여정 배우도 영화 <하녀>로 춘사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예리 배우도 영화 <해무>로 춘사영화제 여자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이력이 있다. 미국에서 만든 한국보다 한국다운 영화. 정이삭 감독은 수상소감을 통해 한국에 대한 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한 상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직접 영화제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상을 받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춘사국제영화제는 오랜 한국 영화계 역사를 장식해 준 한국 영화감독님들의 작품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저의 영화 '미나리' 또한 수많은 한국 영화감독님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한국 영화를 이끌어 오신 모든 영화감독님들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제가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더욱더 영광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y 정이삭
정이삭 감독을 한국에 꼭 모시고 싶었다. 일정을 고려해서 미리 수상소식을 전하고 철저한 보안 속에 여러 차례 방문일정을 조율했지만, 그의 차기작 준비로 인해 영화제 참석은 불가피하게 취소됐다. 대신, 우리는 그에게 트로피를 미리 제작해서 발송했고, 정이삭 감독은 청학을 든 정성스러운 수상소감을 찍어 보내왔다. 트로피가 너무 아름답다는 진심 어린 찬사와 함께.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