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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Aug 01. 2023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을 봄니다.

독립군 수는 셀 수가 없어. 왠지 알아?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내일 독립군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야. by 영화 <봉오동 전투> 中


기록한다는 것

춘사영화제의 트로피는 청학(靑鶴)이다. 청학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사람의 얼굴에 새의 부리를 한 상상의 새로, 청학이 울 때는 천하가 태평하다고 한다. 학은 고고하고 우아한 동물이고, 청색은 하늘과 바다의 색깔로, 신뢰, 평화, 안정, 지혜, 창의성, 신비 등을 상징한다. 춘사의 청학 트로피는 33년 동안 대한민국 영화감독의 창의적인 고고함 그리고 우아한 지혜를 대변해 왔다.


총감독을 맡고 나서 처음 한 일은 춘사영화제의 심벌과 로고를 바꾸는 일이었다. 청학에 어울리는 글씨와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렇게 서예가 불애(不涯) 손동준 선생을 만났다. 일찍이 서예 신동이었던 그는 한국 서예계의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서예를 기반으로 글자가 그림이 되는 그만의 문자추상 서법을 창조했다. 그의 도움으로 역동적인 춘사의 로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


춘사의 트로피 중, 그랑프리인 감독상만이 금학(金鶴)이다. 청학에 스며든 영광의 황금색. 시상식은 영광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다. 나름의 시선과 기준으로 일 년 동안 선보인 수많은 영화를 고르고 골라 공정하게 평가하는 일. 잘 보이지 않지만, 시상을 준비하는 과정이 없다면 영광도 존재할 수 없다. 비록 사람들이 화려한 레드카펫과 수상소감만을 기억하더라도, 누군가는 과정의 가치를 기록해야만 한다.


독립군 이야기

춘사의 상징을 바꾸고, 새로운 채비로 시작된 25회 춘사영화제 그랑프리의 영광은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는 고졸 스턴트맨 출신이다. 학력과 직업은 사람의 일부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작품의 온전한 세계를 보여주는 렌즈가 될 수는 없다.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향해 뚜벅뚜벅 모험을 감행했고, 2006년 <구타유발자들>에 이어 <세븐데이즈>와 <용의자>로 그만의 세계를 찾았다.


원신연 감독은 낮에는 촬영장에서 몸을 굴리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쓰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출세작인 <세븐데이즈>는 2007년 시나리오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시나리오’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화가 한국 스릴러 장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으며, 특히 탄탄한 시나리오와 함께 침체일로의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영화계의 독립군처럼 살아온 원신연 감독이 그린 일제 강점기 독립군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이 영화가 무거운 작품이라고 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각색을 하면서 꼭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그리고 봉오동 전투는 단순한 흥미를 위해 창작된 영화가 아니라 마치 기록을 위한 영화라고도 했다. 독학으로 백여 편의 시나리오를 만든 그 다운 소신이었다.



두려움보다 희망

25회 금학상은 심사과정에서 경합이 매우 치열했다. 봉오동 전투와 다른 한 편의 영화가 끝까지 경쟁했고, 심사위원들의 토론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투표를 해도 계속 동수가 나올 만큼 팽팽한 대결을 벌였다. 결국 세 번의 재투표를 통해 원신연 감독이 영예를 가져갈 수 있었다. 수상의 결과는 시상식 이전에 공개되지 않고, 공개될 수도 없다. 당연히 원신연 감독은 이름이 호명되기 전까지, 수상의 결과를 알지 못했다.


수상을 예상하지 못해서 수상소감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선배들 앞에서 이런 상을 받게 돼서 민망하고 감사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지금도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줬습니다. 그 행복감 위에 의무가 얹어진 것 같습니다.

삶에 있어서 황금 같은 시간을 함께 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 모든 것을 걸고 싸워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영화 '쇼생크탈출'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두려움은 너를 포로로 묶어 버리지만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이 힘든데 두려움보다 희망을 갖고 싸운다면 한국 영화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by 원신연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사람. 춘사가 내게 보여준 원신연은 그런 감독이었다. 그는 요즘 새로운 SF 대작을 준비 중이다. 그의 차기작 <왕을 찾아서>는 1980년 여름 비무장지대 마을에 찾아온 정체불명의 거대한 손님을 맞이하게 된 군의관 도진과 마을 주민들의 모험을 그린 감성적인 작품이다. 장르를 넘고,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 나에겐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그 어떤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액션 그 자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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