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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Mar 20. 2018

언력은 권력이다

통찰력의 7가지 습관, 제2장

언력(言力)은 워딩 파워(wording power)다. 말과 글은 힘이 세다. 짧은 글 몇 개로도 통찰은 발현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황인선 작가는 저서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를 통해 말과 글의 차별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그는 지금 시대에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없다고 말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언력을 만드는 습관
Change Your Words, Change Your World

언력을 만드는 가장 좋은 습관은 은유법(metaphor)과 모순어법(oxymoron)이다. 메타포의 어원은 전이(轉移, metastasis)다. 전이란 먼 곳에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은유는 다른 복제다. 은유법이란 ‘숨겨서 비유하는 수사법’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등이 대표적인 은유법이다. 책상다리, 바늘귀, 보조개(볼+조개) 등의 합성어도 은유의 일종이다.


은유는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한 걸인이 기차역 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구걸하는 동전 통 앞에 ‘나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쓴 푯말을 세워 두었다. 그 앞을 지나던 한 여성이 푯말을 집어 들어 글자를 바꾼다. 갑자기 평소보다 수십 배나 많은 돈이 동전 통을 채운다. 그녀가 바꾼 푯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봄이 와도 봄을 볼 수 없습니다.



모순어법은 서로 반대가 되거나, 양립될 수 없는 말을 하나로 짜 맞추어 독창적인 효과를 노리는 수사법이다. 옥시모론의 어원(oxus=sharp, moros=foolish)은 예리하게 어리석음이다. 똑똑한 바보, 작은 거인, 오래된 미래, 차가운 열정, 소리 없는 아우성 등이 대표적인 모순어법이다. 충무공의 ‘필사즉생 필생즉사’도 모순어법이다. 칼럼니스트 이윤재는 모순어법이 활발한 두뇌활동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모순어법을 가장 잘 구사했던 사람은 누굴까? 아래 글이 힌트다.


Our instruments to melancholy bells,
Our wedding cheer to a sad burial feast,
Our solemn hymns to sullen dirges change,
Our bridal flowers serve for a buried corpse,
And all things change them to the contrary.

축하음악은 슬픈 종소리로,
혼례식 축배는 슬픈 장례식 음식으로,
장엄한 찬미가는 음울한 장송곡으로,
혼례식의 꽃은 매장되는 시체의 장식용으로,
이렇게 모든 것이 정반대로 바뀌는구나.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그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순어법의 교과서다.


Here’s much to do with hate,
but more with love.
Why, then, O brawling love, O loving hate,
O anything of nothing first create,
O heavy lightness, serious vanity,
Misshapen chaos of well-seeming forms,
Feather of lead, bright smoke,
cold fire, sick health,
Still-waking sleep, that is not what it is!

독한 미움이여, 그보다 더 진한 사랑이여.
그러면, 오 싸우는 사랑이여,
사랑하는 미움이여,
오 태초의 무(無)에서 창조한 유(有)여,  
오 무거운 가벼움이여, 진실한 허영이여,
보기 좋은 것 같지만 보기 흉한 혼돈이여!
납으로 된 나래, 밝은 연기,
차디찬 불, 병든 건강이여,
늘 눈떠 있는 잠이여,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언력은 기억하는 힘
측두엽에 언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일반인은 평생 몇 개의 단어를 사용할까? 사전에 등록된 우리말의 단어는 약 50만 개 정도다. 일반인은 이 중 평균 1,000개 정도의 단어를 사용한다. 주변에서 글이나 말을 좀 잘한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평균 2,500개의 단어를 사용한다. 소설가는 5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고, 시인은 1만 개 가량의 단어를 사용한다. 언력은 단어를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느냐와 비례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말처럼, 작가는 단어를 채집하는 사람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를 쓴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 어느 날, 한 친구가 그에게 내기를 걸었다. 단 6글자로 된 소설로 사람을 울릴 수 있겠느냐고. 그는 바로 아래의 소설을 썼다.
이후 6단어 소설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언력은 단어를 기억하는 습관으로 강화된다. 그럼 어떻게 단어를 기억해야 할까? 이야기로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뇌는 크게 4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측두엽은 이야기 저장소(episodic-memory region)다. 우리의 뇌는 중요한 정보를 이야기의 형태로 측두엽에 기록한다. 인지심리학자인 로저 생크와 로버트 아벨슨은 이야기(story)야 말로 지식 축적의 핵심이며, 우리 뇌는 이야기를 훨씬 오래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간단한 측두엽 실험을 해보자. 잠시 눈을 감고,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을 떠올려보자. 1년간 나와 학급생활을 함께 한 짝꿍의 이름이 생각나는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기억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짝꿍과 남다른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그 시절 즐겨보던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들장미 소녀의 이름은? 피구왕의 이름은? 플란다스의 개의 이름은? 개의 이름은 알겠는데, 사람인 짝꿍의 이름은 아직 모르겠는가?


내가 문장을 기억하는 방법
장면을 떠올리고 연기를 시작한다.

영화 ‘역린’의 한 장면이다. 상책役을 맡은 배우 정재영이 중용 23장을 암송한다. 명장면이다. 저 문장을 외우고 싶었다. 강연 마지막에 꼭 외워서 들려주고 싶었다. 글을 프린트해서 외워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그래, 배우처럼 연기를 하면 어떨까? 외우지 말고, 연극을 하자!


연극배우들은 대사를 외워야 한다. 수천 개의 단어를 통째로 암기한다. 머리가 좋아서 가능한 걸까? 아니다, 극 중의 캐릭터가 되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꿀 뿐이다. 연극 삼류배우를 보면 주인공이 햄릿의 대사를 통째로 외워서 1인 5역으로 연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립박수가 절로 나오는 언력이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나를 상책으로 바꾼다. 상책이 되어 중용 23장을 암송한다. 왕과 신하들 앞에서 중용 23장을 들려줘야 하는 상책의 기분을 느낀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아야 하는 책임을 깨닫는다. 틀리면 다시 암송한다. 나는 단어가 아니라 장면을 기억하려고 했다. 기억된 장면은 습관이 된다.


말과 글은 힘이고 권력이다. 언력은 습관으로 키워진다. 은유법과 모순어법은 언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이다. 언력은 단어를 기억하는 힘이다. 단어는 이야기로 바꿔서 기억한다. 그래야 오래 기억된다. 이론을 알아도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지금부터 언력을 습관화하자. (다음 시간에 계속)


말과 행동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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