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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Jul 18. 2018

오만한 편견

이재웅과 쏘카, 그리고 풀러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였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by 소설 '오만과 편견' 中


재산깨나 있는 남자
다음 창업자 이재웅의 별명은 '요다'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21세 무렵, 나중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첫인상>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책은 오스틴의 나이 38세였던 1813년에 출간되었다. 얼마 전, 한국 벤처의 전설이라 불리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이재웅 씨가 스타트업 쏘카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했다. 그의 등장을 보면서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이재웅은 대한민국에서 재산깨나 있는 남자다.  


이재웅은 28세였던 1995년,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그는 2년 후, 무료 이메일 서비스인 한메일을 론칭하면서 일약 벤처계의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후 다음은 카페와 아고라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고, 제주도로 사옥을 이전하며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라이벌 네이버와 치열한 경쟁을 지속하다가 2014년, 모바일의 새로운 강자였던 카카오와 합병을 발표하며 역사의 그림자로 남는다.


사실 이재웅은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기 전인 2008년, 다음에서 퇴사했다. 이후 그는 주로 제주도에 머물며 재산깨나 있는 대주주로 살고 있었다. 그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7년,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과의 설전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라고 비판하자, 절친한 동료를 비판한 김 위원장에게 “오만하다”라고 일갈한다.


혁신이 아니다, 최초일 뿐이다.
네이버 구글, 그 다음은 뭘까?

이재웅이 창업한 1995년은 인터넷 산업의 초창기였다. 어떤 산업이든 가장 큰 기회는 시작기에 있다. 산업혁명이 그랬고, 서부개척이 그랬고,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의 경제발전이 그랬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들도 경제발전의 초창기, 기간산업을 점령한 회사들이다. 이재웅의 다음도, 김범수의 카카오도 그랬다. 훌륭한 혁신을 이룬 것이 아니라, 최초가 됐을 뿐이다.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새로움이다. 다음의 첫 히트작이라고 불리는 한메일은 세계 최초도 아니었고, 가장 편리한 서비스도 아니었으며, 누구나 탐내는 대단한 기술을 장착한 서비스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한국 최초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였을 뿐이다. 카카오톡이 우리나라 최초의 모바일 메신저였던 것과 같은 이치다. 2002년, 한메일은 온라인 우표제를 시도하다 결국 폭망 한다.


그럼 이재웅이 복귀한 쏘카는 어떨까? 쏘카는 다행히(?) 최초가 아니다. 2011년, 그린카가 국내 최초의 카셰어링을 표방하며 등장했고, 쏘카는 같은 해에 패스트 팔로어로 설립됐다. 이후 쏘카는 그린카의 투자자 KT렌탈이 롯데에 인수되면서 약진을 시작한다. 쏘카는 대기업인 SK 등에서 1,43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재웅은 쏘카의 설립비용 대부분을 투자했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운 규칙
vs
회전문 투자
회전문 투자는 회전문 인사와 다름 없다.

이재웅은 쏘카로 복귀하면서 새로운 규칙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또한 "앞으로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규칙들을 제안하겠다"며 이를 다음 세대를 위해 벤처 선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규칙이란 우리 사회에 오래된 패러다임에 따라 만들어진 법령들이다. 결국 규제 철폐다. 이재웅이 투자한 또 다른 카풀 서비스 풀러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재웅은 쏘카 외에도 성수동에 소셜벤처 코워킹 스페이스인 카우앤독을 오픈했다. 여기에는 이재웅이 투자한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업체인 'SOPOONG'을 비롯 벤처캐피털 옐로우독, 벤처 자선 기업 C 프로그램 등이 입주해 있다. C 프로그램은 벤처 1세대 5인방인 이재웅/김범수/김정주/김택진/이해진이 만든 회사다. 그는 대학로 샘터 사옥을 구매한 '공공 그라운드'에도 투자했다.



회전문 인사란, 일부 인사가 주요 보직을 돌아가며 맡는다는 뜻으로 '공직 퇴임 뒤 민간기업, 단체 등에서 활동하다 다시 공직에 발탁되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 벤처 1세대들의 투자패턴을 보면 회전문 인사와 매우 닮은 점을 느낄 수 있다. 본인들의 회사 출신이 설립한 회사에 투자한 후, 다시 인수해서 가치를 높이고, 다른 곳에 팔거나 상장시킨다. 회전문 투자, 내 돈을 부풀리는 편법이다.


이재웅의 새로운 규칙은 오래된 규제를 철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웅의 투자패턴은 오래된 관습인 회전문 인사와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의 규칙은 새롭게 바꾸지 못하면서, 사회적 가치 운운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물론 친한 벤처 1세대들의 투자패턴도 다르지 않으니 몰랐을 수도 있겠다. 익숙한 것은 지혜를 가리기 마련이니까. 혁신은 멈추지 않는 것이 본질이다.


오죽 답답해? 오만한 편견!
오만과 편견은 인간의 속된 욕망과 생활의 논리를 묘파한다.

이재웅은 복귀하면서 "오죽하면 내가 뛰어들었을까"라고 말했다. 또한 "혁신기업가는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고 혁신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혁신기업가들이 국내에 너무 부족하다"며 "이들이 만들어 내는 모델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 그게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이다"라고 설파했다. 나는 그의 주장이 그리 설득력이 크다고 보지 않는다. 기사의 댓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는 오죽 답답해서 복귀한 이재웅의 쏘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다만 그 답답함이 오만한 편견이 아니기를 또한 바란다. 그리고 이재웅이 운을 믿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가 지적한 쏘카의 가치지향 부재나 풀러스의 소통 부재가 스타트업 부진의 본질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를 바란다. 규제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피해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도 아닐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그의 복귀로 확실히 바뀐 건 2가지뿐이다. 한국 스타트업의 평균 연령이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화려한 언론플레이로 그가 투자한 회사의 주식가치가 올랐다는 점. 부디 성공하시라, 끝.


이재웅의 별명은 '요다'라고 한다. 요다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다. 우주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존경받는 기사다. 요다는 다른 제다이를 지배하지 않는다. 요다는 다른 제다이의 성장을 묵묵히 기다리며 돕는다. 마지막 제자였던 '루크 스카이워커'를 훈련시키며, 요다는 이렇게 말한다.


쏘카, 시도란 없어.
하거나 안 하거나 둘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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