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은 없다.
숟가락은 없다.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 中
왜곡은 편향된 사고다. 편향된 사고는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행동이다. 주말 등산로 입구,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등반을 시작한다. 정상에 오르면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는다. 남은 쓰레기는 준비한 비닐봉지에 담아 내려온다. 등산로 입구에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런데 쓰레기는 집에 가지고 가기 싫다.
보통 등산로 입구를 지나 큰길로 커브를 돌면 가로수가 있다. 그 가로수 아래에만 쓰레기봉투가 수북이 쌓인다. 정상에서 그곳에 버리자고 약속을 하거나, 단톡 방에 가로수의 좌표를 찍은 것도 아닌다. 그럼에도 유독 가로수에만 쓰레기가 쌓인다. 누군가 먼저 쓰레기를 버린다. 우리는 평소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쓰레기를 버려도 된다고 믿고 산다. 그래서 가장 먼저 누군가 쓰레기를 버린 곳에만 쓰레기가 쌓이게 된다. 믿는 데로 행동하는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왜곡의 사례는 매우 많지만,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왜곡의 역사는 매우 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지구가 구형이 아니라 평평한 대지였다고 수백 년 동안 믿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항해로 알았지만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지구중심설(천동설)은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하면서 왜곡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3세기, 아리스타르코스가 최초로 지동설을 제안했지만 부정된다. 이후 몇몇 천문학자들이 태양 중심설과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대해 언급하지만,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후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지동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근거는 매우 빈약했다.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 케플러와 뉴턴 같은 학자들이 천체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지동설의 증거를 하나씩 찾아내면서 지동설은 증명된다. 무려 1,400년이나 걸려 발견한 왜곡이었다. 왜곡은 무서운 편견이다. 한번 믿으면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산다. 당연하다고 믿는 것을 깨는 순간, 믿을 수밖에 없는 강력한 편견이 태어난다.
왜곡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계속 벌어진다. 2008년, 두바이는 건설 붐이 한창이었다. 한 부호가 자신이 소유한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 멋진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그가 건축가들에게 내건 조건은 한 가지,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경을 360도로 모두 볼 수 있는 건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때 한 건축가가 이 조건에 도전한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피셔(David Fisher), 이스라엘 출신의 이탈리아 건축가였다. 그는 건물은 움직이면 안 된다는 오랜 왜곡을 깨고, 회전식 초고층 빌딩인 다이내믹 타워(Dynamic Tower)를 설계한다. 일명 다빈치 타워로 불리는 이 건물은 313m(68층) 규모로 고유하게 각 층이 독립적으로 회전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다빈치 타워의 각 층은 90분 내에 최대 1 회전을 하는데, 이로 인해 타워의 모양은 끊임없이 변한다. 가만히 거실에 앉아 있으면, 360도로 변하는 풍경을 모두 볼 수 있게 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아직도 지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피셔는 명예박사학위를 위조했고, 여전히 1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 사기꾼이다. 왜곡은 사기꾼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대사 中
왜곡은 비효율적인 경쟁을 만든다. 반창고 시장은 수십 년 동안 왜곡된 경쟁을 해왔다. 우리가 쓰는 반창고의 색깔은 대부분 살색이다. 그런데 살색은 도대체 어떤 색일까? 흑인과 동양인의 피부색은 분명히 다르다. 그럼 동양인의 피부색은 모두 같을까? 한국인의 피부색은? 나와 내 부모형제의 살색은 같을까? 내 자녀의 피부색? 쌍둥이의 피부색은 정말 같을까?
엄밀히 말해 규정된 살색은 없다. 70억 세계 인구의 살색은 모두 미묘하게 다르다. 우리는 살색 반창고를 붙이고, 안 보일 거라 믿으며 살았다. 살색 반창고를 붙인 사람을 본 상대방은 살색 반창고가 보이지만, 살색을 붙였으니까 안 보이는 척하며 살아왔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다. 살색 반창고는 세상 모두를 속인 왜곡이었다.
반창고 회사 큐래드는 이런 왜곡을 찾았다. 비효율적인 경쟁을 인식한 큐래드는 세상에 전혀 다른 반창고를 내놓는다. 캐릭터 밴드의 탄생이었다. 살색은 어차피 보인다고 생각한 큐래드는 반창고에 캐릭터를 넣으며, 살색보다 더 잘 보이는 반창고를 만든다. 그리고 기존 반창고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다. 경쟁 제품 대비 재구매율이 4.5배가 넘었다.
반창고 시장은 전통적으로 미취학 아동이 주요 고객이다. 많이 다치기 때문이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넘어져 다쳤다. 엄마가 슈렉 캐릭터의 큐래드 반창고를 붙여준다.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슈렉 옆에는 항상 동키가 있어야 해요. 기왕이면 피오나 공주도 함께요. 심지어 큐래드는 아이들의 액세서리로 진화한다. 아이들은 다치지 않았는데도 이쁜 반창고 큐래드를 붙였다. 왜곡을 찾아서 반대로 뒤집으면 새로운 왜곡이 생겨난다.
왜곡을 활용하면 선택받는 제목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제목을 지으며 산다. 보고서의 제목, 게시물의 제목, 책의 제목, 아이들의 이름까지. 단어의 왜곡을 찾아서 반대의 개념을 붙이면 낯설게 하기 효과가 벌어진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낯설게 하기다.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카리스마 – 강하고, 차가운
아우성 – 소리, 비명, 주장
열정 – 뜨거운, 격정적인
우선 내가 꼭 제목에 쓰고 싶은 단어를 노트에 적는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꼭 써야 한다면, 카리스마의 왜곡을 옆에 적는다. 카리스마의 왜곡은 강하다, 차갑다 등이다. 그럼 앞이나 뒤에 그 반대의 개념을 붙인다. 따뜻한 카리스마. 아우성 앞에는 ‘소리 없는’을 붙이고, 열정 앞에는 ‘차가운’을 붙여보자. 낯설지만 익숙하다.
따뜻한 카리스마
소리 없는 아우성
차가운 열정
이런 수사법을 모순어법(矛盾語法, Oxymoron)이라고 부른다. 서로 모순되는 어구를 나열하는 표현법으로 모순 형용이라고도 한다. 수천 년간 작가들이 사용해온 수사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모순어법을 잘 구사했던 대가는 누구일까?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그의 모순어법은 모든 희곡 속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구애하는 세레나데를 살펴보자.
사랑이 가냘프다고? 너무 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 가시처럼 찌르는 것이 사랑이라네.
모순어법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발견된다. 상처뿐인 영광, 밝게 빛나는 어둠, 찬란한 슬픔, 침묵의 웅변, 똑똑한 바보처럼, 가짜인 진짜처럼, 시를 쓰면 이미 시가 아니다, 눈 뜬 장님,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최대의 악덕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등등. 왜곡을 뒤집으면 통찰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