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반생을 살았네 27화
천하제빵을 보면서 좀 씁쓸했다. 빵 경연 맞아?
빵지 순례 열풍과 각종 소셜 미디어를 장식하는 빵 사랑 게시물들을 보며 좀 갸우뚱했다. 빵 맞아?
빵이 좋아서 빵을 만들다가 제빵 기능사 자격증까지 따버린 빵순이의 시각으로 요즘 세태를 봤을 때는 저건 빵이 아닌데 싶은 빵들이 너무 많다. 사실 제빵이 아닌 제과를 가지고 계속 빵빵 빵하니 좀 불편한 마음까지 든다.
자고로 제빵의 세계에서는 글루텐 함량이 높은 찰진 강력분에 이스트를 넣어 인고의 반죽과 발효의 시간을 거쳐 뽀송뽀송하고 말랑말랑해진 반죽을 성형하고 고온의 오븐에 구워내는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것을 “빵”이라 부른다. 제빵 기능사 실기 시험에도 등장하는 빵 종류를 보면 식빵, 단과자빵, 조리/기타 빵으로 카테고리가 나뉘는데 식빵은 딱 모양과 이름만 봐도 ‘나 식빵’인 우유식빵, 옥수수식빵, 버터 식빵, 풀먼식빵, 단과자빵은 기본빵에 밭앙금이나 크림, 소보루 등이 들어가는 빵 종류이고, 그 외 소시지빵, 빵도넛, 호밀빵, 쌀식빵 등 총 20개 품목이 시험빵 종류에 들어간다.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거나 조리의 과정이 추가로 발생하더라도 강력분, 이스트, 물, 소금이 들어가는 기본빵 반죽과 발효의 과정이 들어가야 ‘빵’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는데, 이것저것 넣고 밀가루로 버무려서 바로 중불이나 약불에 구워내는 제과 영역의 품목에 감히 ‘빵’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참 용납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빵 중에서도 건강빵, 식사빵이라 불리는 치하바타, 깜파뉴나 곡물빵, 식빵들을 좋아하다 보니 요즘 베이커리, 빵집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는 빵가게에 들어갔다가 빵보다 속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간 요즘 인기 디저트 빵들을 보고 그냥 나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담백한 진짜 빵이 그리운 시대에 천하제빵을 한다고 해서 나름 기대를 했는데, 디저트가 거의 80인 첫 번째 경연을 보고 실망 가득한 눈으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천장에 빵이 둥둥 떠다닌다. ‘빵 구워 본 지 참 오래됐네.’ 자격증 딸 때는 매주 오븐을 돌려댔고, 한참 선데이 베이킹하겠다고 사진까지 찍어 인스타에 올려보기도 하고, 나만의 가장 맛있는 재료 배합을 만들어 보겠다고 레시피 북도 만들어 보고… 생각해 보니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베이킹을 이렇게 뜨문뜨문하면서 요즘빵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은 아닌 것 같긴 하다.
빵도 제대로 하려면 재료와 배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이스트와 발효종 등 발효 세계에 대한 탐구도 필요하다. 최적화된 발효 온도와 습도를 맞추려면 제빵 발효기가 있으면 금상첨화, 이보다 더 절실한 건 반죽기인데 제아무리 손으로 20~30분을 쳐대도 당최 반죽이 나오지 않아 반죽기는 진작에 구입을 했다. 기계의 힘을 빌려 반죽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기계와 시간을 다루는 요령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든 돈과 시간과 노력의 공식은 똑같이 적용되는구나.
나중에 혹시라도 빵집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이름도 미리 지어 봤다. ‘빵 굽는 이모’
식당 가면 “이모님!” 하고 사람들이 부르는 것에 착안해 만든 이름이긴 한데, 현실에서도 조카가 있는 이모 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빵이 거칠긴 하지만 사 먹는 빵보다 먹고 나면 속이 더 편하다. 이젠 시간 프리한 프리랜서가 되었으니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은 빵들을 좀 만들어볼까 싶다. 말 나온 김에 오늘 오랜만에 선데이 베이킹에 도전! 생애 처음으로 베이글을 구워보았다. 약한 불에 살짝 데쳐야 하는 공정이 있어서 귀차니즘에 시도를 안 했던 빵인데 막상 만들어 보니 해 볼만 한데? 지금까지 선데이 베이킹 빵 굽는 이모였습니다. 빵! 빵!
P.S. 글을 쓰면서 나는 왜 가정용 제빵 발효기를 자꾸 검색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