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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Sep 16. 2021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32. 뇌풍(雷風) 항(恒): 한결같은 마음

작심삼일

마음 먹은 일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경험했던가. '아침 운동을 하겠다', '담배를 끊겠다', '매일 책을 읽겠다' 등 각오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오래 지속하는 사람은 드물다. 머리로는 옳은 뜻을 세우더라도 몸은 편한 것, 달콤한 것,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고 변덕도 심하기에 오래도록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래도록 하기 어려운 것 중 특히 어려운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안평중이라는 제나라 재상을 평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 사귐이 오랠수록 상대방을 공경하였다."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자왈 안평중 선여인교. 구이경지.


안평중은 세간에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공자는 그가 사람들을 잘 사귀며, 사귐이 오랠수록 상대방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사귐이 오래되면 기탄(忌憚, 어렵게 여겨 꺼리는 마음)이 없어지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그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오래도록 함께 지냈다 하여 상대를 업신여기고 공경하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 공경하는 법도가 있어야 하는데 공자는 안평중이 적절한 선을 오래도록 지킬 줄 알아 사람들과 잘 사귄다고 평가한 것이다. 

오래도록 어떤 일을 지켜나가는 것을 주역에서는 뇌풍(雷風) 항() 괘로 표현했다. 지뢰 복의 초구(1효)가 묵묵히 실천하여 지천 태(상괘가 지, 하괘가 천)로 성장하였는데, 지천 태의 1효와 4효가 자리를 바꾸어 뇌풍항 괘가 되어서도 하늘(☰)이 모양이 변치 않으니 '항상'의 뜻을 갖게 된 것이다.

䷗ 지뢰 복 --> ䷊ 지천 태 --> ䷟ 뇌풍 항

그러므로 어떤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지뢰 복의 1효처럼 분발하고 꾸준히 실천하여야 하며, 지천 태의 하괘(☰)처럼 상황이 변하더라도 그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 

<주역전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항 괘를 설명하고 있다. “부부의 도는 오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항(恒) 괘로 받았으니, 항(恒)은 오램이다.”라고 하였다. 부부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된 부부가 관계를 잘 맺고 사는 것은 배우자에 대한 공경함의 도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뇌풍 항이 지뢰 복으로부터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오랜 만남을 유지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항상 부는 바람, 항상풍

바람의 종류 중 항상풍이라는 것이 있다. 항상풍은 '늘 그렇게 부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뼈대도 없고 길도 없는 것이 바람인데 항상풍은 한결같이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열평형을 이루기 위해 적도의 열이 극으로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바람이 부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서 지구의 자전이 가미되어 아래 그림(대기대순환과 항상풍)과 같은 풍향이 나타난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면 항상풍은 위도별로 이름이 다르다. 극에서 위도 60도 부근 사에에서 부는 동풍을 극동풍, 위도 60도부근에서 30도 부근 사이에서 부는 서풍을 편서풍, 위도 30도 부근에서 적도 사이에서 부는 바람을 무역풍이라고 한다. 

대기대순환과 항상풍


이들 바람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북서 유럽 지역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연중 비가 내린다. 연중 비가 고르게 내려 하천의 높이가 거의 일정하므로 하천이 갑자기 범람하는 일이 적어 하천 가까이에 건물을 지어도 위험하지 않다. 아래 사진처럼 프랑스 파리를 관통하는 센 강 가까이에 건물들이 늘어설 수 있는 이유는 편서풍과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나 영국에서 운하나 수운이 발달한 이유도 편서풍으로 인해 강수가 고른 탓이다.

프랑스 파리 센 강 주변의 경관(출처: pixar bay)

적도 부근에서 부는 무역풍도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바람이다. 14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항로 개척에 무역풍을 이용하였다.  당시 항해용으로 사용하던 배는 돛을 달아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이었는데 콜럼버스는 무역풍이라는 동풍을 타고 아메리카에 36일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무역풍이 부는 아프리카 지역까지 이동했다가 무역풍을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하였다. 다시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가고자 할 때에는 북쪽으로 이동하여 편서풍이 부는 구간까지 이동하였다가 편서풍을 타고 유럽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무역풍과 편서풍을 타고 쾌속으로 바다를 질주하는 범선의 모양이 뇌풍 항(䷟) 괘와 닮아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 경(좌_출처: 위키피디아)로와 범선(출처:pixa bay)

한결같은 마음

9월 1일자로 우리 학교에 근무하던 교무부장님이 교감으로 승진하여 학교를 떠나셨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야 교직원들 모두가 한결 같았다. 다만 그 공석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쉽사리 해답을 찾지 못했다. 매일 야근에, 민원에, 선생님들 고충 들어주시느라 고생했던 교무부장님의 자리였던지라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는 평소에 학생에게 자식에게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기가 하기 싫은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을 강조하였는데 막상 이런 상황에 닥치니 말 한마디 지키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 마음 한결같기가 쉽지 않구나. 상황따라 달라지는 것이 마음이라면 공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서로 눈빛을 피하며 지루한 침묵이 이어졌다.
긴 침묵은 내 양심을 괴롭혔다. 나는 참지 못하고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말을 한결같이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에 새긴 여덟 글자 덕분에 교무부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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