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다보면 끼어들기, 과속, 추월 등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때마다 나는 위험한 낌새를 살펴 그들을 피한다. 위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내가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들을 징벌하겠다고 나서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들을 미워하기보다는 마음을 안으로 비춰 오히려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며 운전하지 않나 반성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물러난다. 물러나기 때문에 나의 출근길은 무사하다. 자기 분수를 알고 물러나는 것, 이것이 천산 돈 괘(䷠)이다.
돈(遯)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두 음(陰)이 아래에서 생겨나는데 음(陰)이 자라나 장차 성하고 양(陽)은 사라져 물러가니, 소인이 점점 성함에 군자(君子)가 물러가 피한다. 그러므로 돈(遯, 물러남)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천산 돈
물러남에도 법도가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잘 선택하지 않으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잘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때에 맞게 'go'와 'stop'을 결정하는 것이다. 천산 돈(遯) 괘에는 상황에 따른 '물러남'의 고민이 담겨 있다. 어떤 일을 욕심부리다가 제 때 멈추지 못해 근심이 생기는 상황을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본다.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 물러나야 할 때가 되면 과감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천산 돈의 상괘는 하늘이고, 하괘는 산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높은 곳(☶)에 올랐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하늘(☰)이 있다. 집착해서는 안 된다. 멈출 때를 알고 멈추는 것이 천산 돈이다.
강원도 평창 발왕산 정상에서 본 하늘과 산
䷀중천 건=>䷫천풍 구=>䷠천산 돈
괘의 변화를 놓고 보면 천산 돈은 천풍 구에서 왔다. 천풍 구는 중천 건에서 왔다. 중천 건에서 군자가 득세했으나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소인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 천풍 구이다. 천풍 구의 초육(1의 음효)에 육이(2의 음효)가 더해졌으니 소인의 기세가 오르고 있다. 3, 4, 5, 6이 양효이기 때문에 군자의 세력이 적지 않으나 소인과 싸우지 않고 자신을 바르게 하여 물러나는 모습이 천산 돈이다. <대상전>에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돈이니, 군자가 본받아서 소인을 멀리하되 악하게 아니하고 엄하게 하느니라."라고 이르고 있다. 소인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엄하게 단속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물러남의 삶
다산은 <주역사전>에서 "돈(遯)은 퇴(退)이다. 간(艮)은 산(山)을 의미하니 퇴(退)는 돈(遯)과 뜻이 통한다"라고 하였다.
범부들은 귀한 자리와 부귀를 좇는 데에 정신을 쏟지만, 이와는 반대로 그것을 버리고 과감히 물러난 사람도 있다. '퇴계'는 '퇴계거상(退居溪上)'의 줄임말로 '물러나 시내 위에 거한다'라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평생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기를 바랐기 때문에 조선의 임금 선조, 중종은 이 선비를 등용하는 데 애를 먹었다. 선생은 자신의 호에서 밝힌 것처럼 평생을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했다. 그런 태도가 그의 시 '퇴계'에 보인다.
“몸이 물러나니 어리석은 내 분수에 맞아 편안하지만 身退安愚分
학문이 퇴보할까 늘그막을 우려하네 學退憂暮境
시내 가에 비로소 거처를 정하고 溪上始定居
퇴계(退溪)를 굽어보며 매일 반성함이 있네.” 臨流日有省。
『퇴계집』, ‘퇴계(退溪)’
퇴계 선생은 학자로서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욕심을 버리고 그칠 때를 알아 물러났다. 도산서원에서 후학을 기르니, 퇴계 선생의 삶에서 천산 돈(䷠)의 괘가 느껴진다.
그칠 때를 알아야
연말이 되면 선생님들은 다음 해에 맡을 보직을 정하느라 생각이 많아진다. 모든 일에는 가볍고 무거움, 쉬움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인기 있는 보직과 인기 없는 보직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학교는 민주적인 회의 절차에 따라 업무의 경중을 균등하게 분배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양으로 질을 조절하기는 쉽지 않다. 업무의 전문성, 업무 담당자의 능력, 업무 담당자 간의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여러 변수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업무를 조정하는 동안 학교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업무 조정 기간인 12월 말부터 2월 초까지 학교는 홍역에 시달린다.
군자들만 사는 세상은 옛날이고 지금이고 없었다. 비인기 보직에 대해 '그 일은 힘든 일이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솔선하여 나서고, 인기 보직에 대해서는 '저보다 선생님께서 그 일에 적임자이십니다.'하고 물러나는 모습이 있는 학교 말이다.
자신의 이익과 고집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동료애를 버릴만큼 자신의 이익과 고집이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양보와 배려가 있는 학교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