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송중기, 송혜교 배우가 주연한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도 재미있었지만 나는 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의도로 제목을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진정 태양의 후예들이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은 태양 에너지가 변형된 결과이며 시시각각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식물에서 기원하고 있고, 그 식물은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니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는 태양에너지의 변형물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태양의 후예'이고, '별에서 온 그대'들이다. 이렇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근원적으로는 하나이고, 형제자매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에서 태양은신으로 숭배되었고, 우주의 동력으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화나 이집트 신화에서는 태양은 생명의 신이었고, 동양에서는 양의 기운을 상징하여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었다.
인간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낮과 밤을 정했고, 일할 시간과 쉴 시간을 나누었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계절이 변함을 알게 되었고, 인간들은 계절에 따라 삶의 방식을 변화하며 살게 되었다.
태양이 하늘로 올라 대지 위에 빛을 비추기에 오늘도 지구에는 생명이 꿈틀댄다. 땅은 태양의 에너지를 담아 생명의 터전이 된다. 대지를 비추는 태양의 모양이 화지 진(晉) 괘이다.
䷢ 화지 진(晉)
진(晉) 괘는 <서괘전>에 “괘 됨이 리(離)가 곤(坤)의 위에 있으니, 밝음이 지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해가 땅에서 나와 올라가 더욱 밝으므로 진(晉)이라 하였으니, 진(晉)은 나아가 광명하고 성대한 뜻이다. 무릇 사물은 점점 성함을 진(進)이라 한다. 이 때문에 <단전(彖傳)>에 “진(晉)은 나아감이다.”라고 하였다. <잡괘전>에서 "진(晉)은 밝은 낮이다."라고 하였고 <상전>에서는 "밝은 태양이 지상으로 떠오르니 만물이 자라서 나아간다."라고 하였다.
다산 선생은 그 의미를 조금 더 확장시켜 "'진(晉)'이라고 한 것은 하지와 동지를 가리킨다. 옛 글자로 '진(晉)'을 '진(아래 <설문해자>의 고자 참조)'자로 썼던 것을 통해서도 증험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또한, "진(晉, ䷢) 괘는 관(觀, ䷓) 괘로부터 왔다. 손(☴, 관 괘의 4,5,6)은 하나의 음이 처음 생겨난 것이니 하지(夏至)에 해당한다. 또, 진(䷢) 괘는 소과(小過, ䷽) 괘로부터 왔다. 진(☳)은 하나의 양이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니 동지(冬至)에 해당한다. 이 손과 진이 옮겨져서, 리의 해가 되었으니, 이것이 양지일, 즉 '동지'와 '하지'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 풍지 관(觀) - ䷢화지 진(晉)- ䷽ 뇌산 소과(小過)
나아갈 진, <설문해자>
<설문해자>에 "진은 자라서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해가 떠오르니 만물이 자라서 나아간다라는 뜻이다. '일(日)', '진(臸)'을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에라토스테네스,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다. 무지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알게 될 때까지 묻고 답하여 스스로 밝아지는 것이다. 어떤 것을 모르면 어둑하여 판단을 내리기 어렵지만 그것을 잘 알게 되어 밝아지면 명쾌하게 결론을 낼 수 있다.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대지 위의 태양처럼 밝은 이성을 가진 에라토스테네스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당시 이집트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는데, 그는 그 도서관을 책임진 도서관장이었다.
어느 날 그는 어느 파피루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되었다.
"남쪽 변방인 시에네 지방, 나일강의 첫 급류 가까운 곳에서 6월 21일 정오에 수직으로 꽂은 막대기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짓날 한낮에 가까울수록 사원의 기둥들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다가 정오가 되면 아예 사라진다. 그때 깊은 우물 속 수면 위로 태양이 비춰 보인다."라는 내용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태양 고도에 대한 자세한 관측 보고가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수많은 파피루스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유심히 본 에라토스테네스의 행동도 놀라웠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막대를 수직으로 꽂고 그 막대가 6월 21일 정오에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직접 조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그림자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똑같은 시각에 시에네에 꽂힌 막대기는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림자가 생기는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고민하다가 전제를 바꾸었다. 지구의 표면은 곡선이며, 곡선의 구부러진 정도가 클수록 같은 시기 서로 다른 장소의 그림자 길이의 차이는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태양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태양 광선이 지구에 평행하게 도달하게 될 때, 두 장소의 '막대-그림자 사이의 각도'를 알고 알렉산드리아-시에네의 거리를 통해 결국 지구의 전체 둘레까지도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아래 그림 참조). 에라토스테네스는 하짓날 알렉산드리아의 막대-그림자의 각도가 약 7도,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거리가 약 800 킬로미터임을 측정했고, 그 결과 지구의 둘레가 4만 킬로미터임을 알게 되었다.
현대 과학의 집약체인 미 항공우주국이 측정한 지구의 적도 둘레가 40,030km임을 생각해보면 에라토스테네스의 결과는 매우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대상전>에 "밝은 것이 땅 위로 나오는 것이 진이니, 군자가 본받아서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마치 에라토스테네스가 하늘 위에 뜬 태양을 분석하여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모습과도 같다.
나아감의 도
앞의 괘인 뇌천 대장은 그 뜻이 크고 굳세다. 그러니 그 뒤에 나온 괘가 앞으로 나아감을 뜻하는 진(晉) 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진(晉)은 진(進)과 통한다.
괘사에 "진(晉)은 편안케 하는 제후에게 말을 많이 주고 세 번을 만난다."라고 하였다. 크고 강한 자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그 리더의 일을 도와주는 유능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리더가 자신의 조력자를 충분히 보상하고 자주 만나 소통하니 그 조직은 앞으로 나아갈 만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능력을 가진 이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아 고급 노동력이 이탈하고, 노동자들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하여 분쟁이 발생하는 일을 우리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만난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고구려가 당에 패한 것은 정면대결에서 진 것이 아니라 장수의 이탈과 지도부의 분열이 원인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서로 의사소통하여 생각이 한 곳을 바라볼 때 그 조직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내가 속한 조직이 앞으로 나아가는지 의문이다. 성과급 몇 푼으로 구성원들을 분열시키고, 이미 답을 정해 놓고 공청회를 벌여 정책을 결정하는 행태는 결코 우리 사회의 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밝은 대낮의 태양처럼 창창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원한다면 화지 진 괘의 지혜를 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