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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Jan 10.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36. 지화(地火) 명이(明夷): 남극의 밤, 극야 현상

극야 현상

학년 말, 학생들은 표류하는 배처럼 갈 길을 잃는다. 시험이 모두 끝났으니 그들의 행동은 당연하다. 학생들은 그동안 조였던 나사를 풀고 여유를 즐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교사인 나는 이 시기를 그냥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바빠서 보지 못했던 다큐멘터리를 학생들과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들과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는 BBC에서 만든 <Planet Earth>이다. 영상 감독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세계 각지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필름에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후, 산지 지형, 빙하 지형, 하천지형, 화산지형 등 자연 지리적 분류 기준을 적용하여 만든 몇 안 되는 지리 영상이다. 그래서 지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 영상은 매우 소중한 보물이다. 그리고 그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1부이다.

1부 제목은 'From pole to pole'이다. 북극에서 시작하여 남극까지 세계의 모든 기후 지역을 영상에 담았다.

1부는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뭉쳐 있는 수컷 펭귄 무리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알을 낳느라 지친 암컷 펭귄들은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수 백 킬로 떨어진 바다로 이동하고, 수컷 펭귄들은 암컷으로부터 넘겨받은 알을 품고 긴 겨울을 견딘다. 알을 놓치면 펭귄 무리의 미래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수컷 펭귄들은 필사적으로 기나긴 밤을 알과 함께 견딘다. 남극의 밤은 석 달 넘게 지속된다.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북반구와 남반구는 계절이 정반대로 나타난다. 북반구로 넘어간 태양은 한동안 남극을 비추지 않는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 수컷 펭귄에게 고난이 커져갈 즈음 카메라는 북극으로 향한다. 북극은 석 달 간 지평선 아래로 태양이 내려가지 않는다. 그리고 해가 지지 않는 북극의 설야 한 복판에서는 암컷 북극곰과 새끼 북극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굴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북극과 남극의 낮과 밤은 중위도 냉, 온대 지역에 사는 우리들에게 호기심을 안겨준다.

극지방의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화지 진(晉) 괘의 상이라면,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흑야 현상)은 지화 명이(明夷) 괘의 상이다.

䷣ 지화 명이 -  ䷢ 화지 진

명이(明夷) 괘에 대해 <단전>에서는 "괘 됨이 곤(坤)이 위에 있고 리(離)가 아래에 있으니, 밝음이 지중(地中)으로 들어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晉)을 뒤집으면 명이(明夷)가 되므로 뜻이 진(晉)과 정반대가 된다.


지화 명이, 현자는 어디로?

() 나라 말, 주(紂)라는 폭군이 있었다. 『사기』에 "以酒為池,縣肉為林,使男女裸相逐其閒,為長夜之飲(술로써 연못을 삼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삼고, 남녀로 하여금 벗고 그 사이에서 서로 쫓게 했으며, 밤새 마셨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주지육림의 주인공이 바로 은() 나라의 주(紂) 임금이다. 그는 삼촌인 비간이 정치에 대해 직언을 하자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구멍이 있다고 하니 보자."라고 하면서 삼촌을 죽였을 만큼 잔인한 인물이었다.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주변에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간신만 득실거렸다. 이처럼 암울한 시기를 성인과 현자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기자(箕子)는 미친 척하고 동이(東夷)의 땅에 거처하였고, 미자(微子)는 은나라를 도망 나와 송나라로 은둔하였다. 문왕은 서쪽 오랑캐들과 섞여  살았다. 성인과 현자들이 몸을 보전하고 상하지 않으려면 밖으로 흩어져 달아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괘 전>에서 공자는 "이(夷)는 상(傷)함이다."라고 하였다. 밝은 현자들이 상하는 때가 바로 명이(明夷)이다.

한편,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명이 괘에 대해 다른 주석을 하였다. 다산의 <주역사전>에 "명이 괘는 임괘로부터 왔다. 임괘에는 진(☳, 2,3,4)과 태(☱, 1,2,3)가 있었는데 명이 괘로 옮겨가게 되면, 거기에는 리(☲, 1,2,3)와 감(☵, 2,3,4)이 있다. 동쪽의 이(夷, 진은 동방), 서쪽의 융(戎), 남쪽의 만(蠻), 북쪽의 적(狄, 감은 북방) 모두 곤(☷)의 나라의 변두리에 편입되니(임 괘의 3,4,5,6) 이것은 중국 변방을 포괄하는 상이다. 리(☲)로써 사방 오랑캐를 밝혀 문덕을 펼치니, 이것을 일러 '명이', 즉, '오랑캐를 교화한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夷)' 자를 본뜻인 오랑캐로 해석하여 "중국이 어두워져 버린 것이 마치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고, (현자들이 변방으로 흩어져) 오랑캐의 나라들이 밝음을 얻은 것과 같다."라고 괘를 풀이하고 있다.

䷒지택림 - ䷣ 지화 명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지화 명이의 때를 당하여 고초를 치른 인물들이 많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의 저자인 고 신영복 교수님이 그러한 분 중 하나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복역한 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20년간 치렀지만 한 평 남짓한 감옥 안에서 스스로 빛을 비추며 '더불어 숲'을 노래했다.

신영복 교수님의 작품 중 <일몰>을 소개한다.

오늘 저녁의 일몰(日沒)에서
내일 아침의 일출(日出)을 읽는 마음이
지성(智性)입니다.

지화 명이의 시절에 처해있더라도 해가 반드시 떠오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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