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60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게 해 줄 후보가 누구인지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의 행보를 보면 걱정스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남·녀 혐오, 세대 간 갈등, 이념과 진영 갈등을 부추기며 표를 모으는 후보들이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가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인구 5천 만의 리더가 되려면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 반목(反目)을 부추기지 말고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정책이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리더가 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들이 갈등을 부추기고 서로 반목하는 모습에서 화택 규(睽) 괘가 보인다.
䷥ 화택 규
규(䷥, 睽)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규 괘 됨이 위는 리(離)이고 아래는 태(兌)이니, 리(離)의 불은 불타 올라가고 태(兌)의 못은 적시고 내려가서 두 체(體)가 서로 어김이 규(睽)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불과 물의 갈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긋남의 뜻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다산 선생은 <주역사전>에서 "규(睽)는 '등질 발(癶, 다 리가 멈추어서, 서로 등지고 있는 형태에 근거한 글자)'에서 나왔다. '계(癸)'는 '화살을 쏜다.'는 뜻이다. 화살이 발사되면 활과 화살은 서로 분리된다." 라고 하였다. 서로 등지고 다른 방향으로 활을 쏘아 보내면(癸) 다른 곳을 바라볼(目) 수밖에 없으니 규(睽)이다. 따라서, 규(睽)는 반목(反目)하는 뜻이 된다.
계(癸)의 갑골문자. 화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
화택 규, 풍화 가인을 뒤집은 괘
풍화 가인 괘는 안으로는 반듯하고, 밖으로는 유순한 바가 있어 가정의 화목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풍화 가인 괘를 정반대로 뒤집어 화택 규가 되면 그 뜻도 반대가 된다. 풍화 가인은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면서 서로 화합하는 뜻이 있는데(1은 양,2는 음,3은 양,4는 음,5는 양임. 6효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의 자리임), 화택 규 괘에 이르러서는 초구(1효)를 제외한 나머지 효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니(2,3,4,5,6이 모두 제 자리가 아니다.) 구성원이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다.
䷤풍화 가인 - ䷥ 화택 규
괘의 추이(推移)에서도 '반목(反目)'의 뜻을 살필 수 있다. 규 괘는 대장 괘로부터 나왔는데, 대장 괘는 아래에 화살이 4개가 있고(1.2.3.4) 위로는 진(☳, 4,5,6)이 있어 발사가 되니 화살을 쏘는 상이 있다. 뇌천 대장의 3이 6으로 이동하여 화택 규가 되니, 감(3,4,5)의 화살 하나를 발사하면 활과 화살이 서로 분리되어 리(☲, 불은 눈을 상징함)가 두 개가 되니(2,3,4와 4,5,6) 이에 규(睽)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규 괘는 중부에서 왔다. 중부는 믿음을 뜻한다. 중부 괘를 겸획하면 대리(大離, ☲)가 되는데, 소녀(1,2,3)와 장녀(4,5,6)가 서로 믿고 그 눈(겸획한 대리)을 쳐다보는 상이다. 그런데 중부 괘의 4와 5가 자리를 바꾸어 규 괘가 되면 비록 눈은 있으나 4로 가로막혀 서로 마주 보지 못하게 된다. <단전>에 "두 여인이 함께 살고 있으나, 그 뜻이 같지 않다."라는 말이 이것이니 이에 규(睽)라고 할 수 있다.
䷡ 뇌천 대장 - ䷥ 화택 규- ䷼ 풍택 중부
지리교육, 지역의 반목을 다스리다.
화택 규(睽)에는 "작은 일(小事)이면 길(吉)하다."라는 괘사가 붙어 있다. 서로 반목하고 있을 때 두 집단이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작은 일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괘사가 붙은 듯하다. 그렇다면 작은 일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이고 친근한 일을 의미한다. 국제 외교에서 소소한 문화적 교류가 바탕이 되어야 큰 경제 협력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작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근대 지리학의 성립 과정에서 화택 규의 괘사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1871년 1월 18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현재 독일 북부 지역) 왕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1871년 당시 독일은 25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었고, 지역적 특색이 강하여 통일되었다고는 하지만 엉성한 국가 시스템이었다.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 국민'이라는 이름보다 '프랑크푸르트 사람', '함부르크 사람', '작센 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독일 정부는 국가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들을 끈끈하게 연결할 무언가를 만들고자 고민했고, 그 결과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지리교육'을 선택했다.
독일 정부는 '게르만 문화권'이라는 지리학적 개념을 학생들에게 심어주어 근대 독일의 동질성을 만들어 이식하고자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족'이나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고안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것을 국민들 마음속에 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대학에는 지리학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독일은 급하게 대학 교수들을 뽑아 지리학과를 신설했고, 지리교사를 양성하여 초·중·고 각급 학교에 투입했다.
교육의 효과는 놀라웠다. '게르만 문화권', '게르만 민족' 등의 개념을 학습한 독일 학생들은 이 땅의 주인이었던 게르만 민족이 자신들의 조상이며, 그 자손이 자신들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독일 정부는 불과 한 세기만에 지독한 지역감정을 뛰어넘는 국민의식을 국민들에게 이식시켰다. 후일 독일은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유럽의 강대국으로 한발 더 다가가게 되었다.
서로 분열된 집단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거대담론이나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대신 교육을 통한 점진적인 개혁을 선택한 근대 독일의 행보는 "규(睽)의 시절 작은 일이면 길하다."라는 괘사와 맥이 닿는다.
일 줄이기
어려서 나는 시력이 좋은 편이었다. 좋았을 때 눈을 아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10대에는 컴퓨터 게임, 20대에는 독서, 30대 이후에는 일로 눈을 혹사시키다 보니 근시, 난시가 심하게 생겨 지금은 조금만 뭘 해도 쉽게 눈이 피로해진다. 게다가 40대 이후에는 노안이 와 작은 글씨를 읽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버릇 고치기가 쉽지 않다. 세상 즐거움의 절반 이상이 보는 즐거움 아닐까. 방학이 되었으니 쉬면 좋으련만, 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규(睽) 괘를 읽다가 문득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시력이 다름을 느낀다. 왼쪽 눈의 난시가 심해진 느낌이다. 더 나빠지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 작은 일이면 길하다."라는 말처럼 이번엔 정말 일을 줄여야 할까 보다.
[여담 2022 개정교육과정에 대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 교육에서 '지리'라는 과목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경제교육, 법교육, 소프트웨어 교육, 인공지능 등 중요하지 않은 교육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 이전에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길 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함께 분노했는가.
우리는 국민적 동질성과 한반도라는 땅을 근거로 하나가 되었다. 70년간 이어진 '지리교육'의 혜택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22년 개정교육과정>에서 모든 지리과목은 선택과목이 되어 수십 개의 과목들과 함께 섞여 학생들에게 선택받는 운명이 되었다.
지리라는 과목은 국민 전체가 함께 배우지 않으면 본래적 의미가 사라진다. 지리학이 근대 독일이 국민 통합을 목적으로 만든 계획적인 학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세계 강대국들이 아직까지 지리(geography)를 비중 있게 가르치는 이유를 무겁게 생각했으면 한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지리를 가볍게 여겨 우리 학생들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