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독서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을 다 읽으면 가볍게 점검을 한다. 어떤 내용을 읽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대화하듯 물어본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약간의 수고가 따른다. 아이들 책이라 하여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수는 없다. 어른도 책을 읽고 이해해야 비로소 물을 수 있다.
독서 후에 느끼는 감동은 책의 두께나 글자 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 책을 어른이 읽는 것이 시간낭비가 될 수 없다. 우리 쌍둥이 아이들이 취학 전에 읽은 책 중에 '하마의 눈알'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아동 도서에 대한 시각을 바꾸게 한 책이었다. 글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웅덩이에 사는 하마라는 녀석이 한쪽 눈알을 잃어버렸다. 하마는 놀라 울며불며 허둥지둥 웅덩이를 뒤졌다. 하마가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자 웅덩이는 점점 탁해졌다. 가라앉은 눈알을 찾지 못한 하마는 더욱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자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고 있던 현명한 악어가 말했다.
"하마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렴." 날뛰던 하마는 악어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했다. 시간이 지나자 혼탁했던 웅덩이는 저절로 맑아졌고, 웅덩이 바닥에 떨어진 하마의 눈알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하마는 잃어버린 눈알을 찾았다는 내용이다.
어떤 어려움을 만났을 때 방법을 찾지 못하거든 현명한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
주역에서도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멈추어 기다리는 지혜'를 나타내는 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산 건 괘이다. 건(蹇)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괘 됨이 감(☵, 坎)이 위에 있고 간(☶, 艮)이 아래에 있으니, 감(坎)은 험함이요 간(艮)은 그침이니, 험함이 앞에 있어 그쳐서 나아가지 못한다. 앞에 험함(險陷)이 있고, 뒤에 높은 산이 막혀 있으므로 건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수산 건
감입곡류 하천과 산지
수산 건 괘는 그 모양이 앞에는 강(☵)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다. 그 모양이 마치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을 연상케 한다. '감입곡류 하천'이란 평지를 흐르던 하천이 지반 융기나 침식 기준면 하강으로 인해 원래 흐르던 물길을 깊이 파면서 만들어진 하천이다. 깊게 파며 곡류하다 보니 감입곡류 하천이 발달하는 곳에는 하천의 침식으로 형성된 절벽과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모래톱이 아래 그림처럼 번갈아 나타난다.
유속이 빠른 하천 바깥쪽으로는 수심이 깊은 소(沼)가 나타난다. 이곳은 수심이 깊고 소용돌이가 있어 물놀이하기에는 위험하지만 깎아지른 절벽과 깊은 물이 어울려 아름다운 경치를 나타난다. 반면, 유속이 느린 하천 안쪽은 수심이 얕은 포인트 바가 나타난다. 이곳은 수심이 얕고 모래와 같은 퇴적물들이 쌓이는 곳이다. 따라서 물놀이 하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해당한다. 이 같은 감입곡류 하천은 한강·금강·낙동강의 중상류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동해 사면을 따라 흐르는 삼척의 오십천과 가곡천, 울진의 불영천과 왕피천, 양양의 남대천에도 잘 나타난다.
감입곡류천이 나타나는 산지 지역은 급경사의 사면과 하천 주변의 구불구불한 골짜기 때문에 이동에 어려움이 따랐다. 다리를 놓는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뱃사공의 도움을 받아 건너편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기상 상태가 나쁠 경우에는 이마저도 어려웠다. 후에는 다리가 놓이고 도로가 건설되었지만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거의 모든 도로는 하천 주변을 따라 건설되었고, 하천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들이 많았다. 최근 들어 터널 건설 기술이 좋아져 직선 도로와 다리가 많이 건설되었지만 장마철 갑작스럽게 비라도 퍼붓는 날에는 무서울 정도로 하천의 물이 불어나 이동을 꺼리게 한다.
<단전>에 이르기를 "건(蹇)은 어려움이니 험한 것이 앞에 있다. 험한 것을 보고 능히 그치니 지혜롭도다."라고 하였다. 깊은 산 휘어도는 골짜기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이 건 괘에 대한 설명과 닮아 있다.
멈춰기다리는 지혜
<논어> '술이편'에 공자가 안연을 칭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에 시샘하던 자로(子路)가 자신의 무력(武力)을 우쭐대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께서 대군을 동원하실 경우에는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맨주먹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발로 강물을 건너가려 하다가 죽어도 뉘우치지 않는 그런 무모한 자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 일 처리에 앞서 겁낼 줄 알고, 잘 도모하여 반드시 성사시키는 그런 사람과 함께 하겠다."
공자는 험한 일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자로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핀잔을 주며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꾸짖었다.
물은 산이 가로막자 가볍게 돌아간다. 육중하게 버티고 있는 산을 힘으로는 이길 수는 없지만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유유히 돌아가는 지혜를 발휘한 물은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고 만다. 문제 상황에서 해결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나는 어릴 적 정면돌파만 알고 돌아갈 줄은 몰랐다. 정면돌파를 선호하다 보니 다툼은 많아지고, 정신은 고되었다. 잠시 멈춰 느긋하게 기다려도 되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둔하고 무모했다. 수산 건의 뜻을 살려 문제 상황 앞에서 냉정하게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