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택산(澤山) 함(咸): 감동, 결혼, 출산, 인륜의 시작
최근 지인들이 줄지어 결혼 소식을 알렸다. 선남선녀가 짝을 맺고 가정을 꾸린다는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떨리는 표정으로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신부, 긴장한 얼굴로 하객을 맞고 있는 신랑의 모습을 보며 나는 택산(澤山) 함(咸) 괘(䷞)를 떠올린다.
본래 함 괘는 천지 비괘에서 왔다. 이 괘는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빈틈 없이 물러섬이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꽉 막혔다 하여 비(否, 막히다) 괘(䷋)이다. 그런데 더이상 물러설 것 같지 않은 하늘과 땅이 서로가 가진 것을 하나씩 주고 받으며 함 괘로 변한다. 3효와 6효가 자리를 바꾸니 상괘가 연못, 하괘가 산으로 이루어진 함 괘가 만들어진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면 감정이 생길 리 없고, 감정이 생기지 않으면 만남이 없고, 만남이 없으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서로를 보고 감응해야만 그 때부터 사람의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상전>에서는 함 괘의 상괘인 태 괘(☱)는 소녀, 하괘인 간 괘(☶)는 소남을 의미한다. 함 괘는 소녀와 소남이 결합되었으니, 이는 어린 남녀가 만났음을 의미한다. <서괘전>에 “남녀가 있은 연후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연후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연후에 예의를 둘 곳이 있다.”라고 하였다. 남·녀가 교합하여 부(夫)·부(婦)를 이루므로 함(咸) 괘는 부부(夫婦)의 연을 맺는 뜻, 즉 결혼이 된다.
인생사의 시작이 결국 남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인간의 삶을 다룬 <주역> 하경(下經)의 시작이 함 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통적으로 혼인은 때가 되면 누구나 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혼기가 찬 자식을 혼인시키지 않으면 나라에서 부모에게 죄를 물었다. 왜냐하면 혼인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진 세상과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혼인시키지 않는 것은 자연의 도를 어기는 것이므로 유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절이 많이 변하였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결혼소식이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결혼율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아래 표는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 추이를 나타낸 것인데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연간 40만 건이 넘는 혼인 건수가 199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9년도에 21만 건으로 줄었다. 1981년부터 2019년까지 약 40년 동안 절반 넘게 줄어든 것이다.
혼인건수가 이렇게 큰 폭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인건수가 줄면 출산율이 저하될 수 있다. 위의 표 '1997-2019 국내 출생아수 변화'를 보면 혼인건수 그래프의 모양과 출생아수 변화 그래프의 모양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산율이 줄어들면 인구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는 변동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정부는 세수가 줄어들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정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고, 기업은 구인난을 겪거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을 대체할 로봇, 인공지능 등 기계의 수를 높일 것이다. 노동자가 귀해져 임금이 올라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반대로 기계로 대체할만한 노동은 사라지거나 가치가 저하되어 임금시장에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사회 양극화로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학교에서는 학급 인원수 조정이 필요하며, 교사 인력도 조정이 불가피하다.
여러가지 변화 중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2019년도 출생아 수는 302,676명으로 집계되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이 차지하고 있다. 전라북도의 경우 출생아 수는 겨우 3,971명, 제주도는 4,500명에 불과하다. 17개 시·도 가운데 출생아수 1만명이 되지 않는 시·도가 8개이다. 이들 시·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존폐에 대한 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나의 걱정은 대한민국의 90% 면적을 차지하는 '지방'이라는 공간에 주인공인 사람이 사라져 쓸쓸히 사라져가는 것이다. 간단한 은행 업무를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이웃 도시로 이동하고, 집 근처에 병원이 없어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세상이 멀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활력을 잃고 황무지로 남았을 때 우리는 현재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혼인수가 감소하는 것일까? 2015년도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한 아래의 그림를 보면 혼인수 감소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는 것인데 성별마다 사정이 있다.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라는 응답은 남녀 모두에게서 높게 나왔다. 이 결과는 자칫 원하는 성격의 인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가정을 경영하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배우자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기대치로도 볼 수 있다. 여성의 응답 중 '결혼보다 내가 하는 일에 더 충실하고 싶어서'라는 응답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왔는데 이를 생각해보면 결혼을 한 이후에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적으로 육아휴직을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은 여성의 경력 단절과 실업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우리는 수도 없이 경험했다. 남성들은 '소득이 적어서'라는 답변의 비율이 높은데 한국 사회에서 '남자는 주택, 여성은 혼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작용하였다. 집값이 천장부지로 올라 전세도 수억원씩 하는 한국 사회에서 거주 비용을 구하다가 '적당한 나이'를 놓치고 결혼할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이 결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지 않고 아파트 투기꾼들에 놀아나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고, 여성 경력 단절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정치권, 정부 인사들의 책임이 크다. 매미도 때가 되면 짝을 찾겠다고 울어대며 삶을 이어나가는데 하물며 경제적인 이유로 혼인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결혼하고 나서 5년 간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당시 옆자리에 계시던 학년부장 선생님이 우리를 딱하게 여기고 본인의 보물이라고 주신 것이 있다. 자신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본인을 아끼던 분이 주신 '백두산 천지에서 가져온 남근석'인데 이것을 베게 밑에 두고 자면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은 반신반의하며 그분이 시킨대로 했는데 아이가 생겼고, 그 돌의 영험함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부장님은 나에게 그 돌을 건네시며 아내의 베게 아래에 넣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돌의 일곱 번 째 주인이 되었고, 믿기 어렵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내가 쌍둥이 아이를 가졌다. 백두산은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산이지만 천지라는 연못을 품고 있다. 택산 함괘의 모양이다. 음과 양이 서로 감동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가져온 돌이라 잉태의 효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얻은 쌍둥이 사내아이들이 벌써 초등학교 5학년생이 되어 신기하게도 사람노릇을 하고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정리정돈 등등 부모를 도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 소중한 아이들이 짝을 맺고 독립하여 가정을 이루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경제적인 이유로 혼인을 미루거나 포기한다면 이것만큼 큰 비극은 없을 것이다.
택산 함 괘를 보며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뜨겁게 사랑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