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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Sep 28.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57. 중풍(重風) 손(巽) : 태풍의 빈도수는 증가하고 있을까?

체육선생님의 구령 소리

3년 만에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린다. 한 동안 학교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따르느라 활동적인 교육과정을 거의 운영하지 못했다. 소풍, 수학여행, 체육대회, 축제, 합창대회 등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활동적인 교육과정을 전부 보류하고 만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운동장은 비어 있었고, 학생들은 생기를 잃었다. 실내에서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야 방역지침이 어떻게 변하든 큰 상관이 없었겠지만 사실 그런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음껏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체육대회가 열린다. 방역 지침이 완화되면서 학교는 기지개를 펴고 있다.

운동장에서 체육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호령하는 마이크 소리가 교실까지 들린다. 예전같으면 시끄러워서 수업을 못하겠다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반갑다. 체육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학생들은 축구 예선전을 치르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교실에서 까칠하던 학생들도 운동장에서 체육선생님의 명령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게 보인다. 구령대에서 학생들에게 지도하는 체육 선생님들과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따르는 학생들의 표정에서 중풍 손(䷸) 괘가 보인다.

중풍 손(䷸)은 손(☴)이 상하로 거듭된 괘이다. 택(☱)이 입을 위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위를 향하여 우러러 고(告)하는 것이라면 모양이 반대인 손(☴)은 아래로 입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아래를 향하여 명령하는 것이 된다. 손(☴)이 중복되었으니 거듭 명령을 내리는 뜻이 되니 체육선생님들이 마이크를 들고 학생들에게 호령하는 모습이 된다.


명령과 순종의 뜻을 품은 중풍 손

손(☴, 巽)은 한 음(陰)이 두 양(陽)의 아래에 있어 강한 두 양(陽)에게 약한 하나의 음이 순종하는 모양새다. 하나의 음효(陰爻)가 두 개의 양효(陽爻)밑에 들어가 엎드려 있으니 괘상에서 ‘들어가다’, ‘따르다’라는 뜻이 생겨났다. 손괘는 바람을 상징하는데, 바람이 사물을 움직이므로 ‘명령’의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두 개의 손(☴, 巽)이 거듭 되니 중풍 손(䷸)은 거듭 순종하고, 거듭 명령하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중풍 손은 천산 돈(䷠)에서 온 것이다.(천산 돈의 4가 2로 내려왔다.) 천산 돈의 괘를 1,2와 3,4 그리고 5,6으로 겸(兼)하면 대손(大巽,  ☴)이 되므로 본래부터 중풍 손은 손종하는 뜻이 숨겨져 있다.

䷸ 중풍 손 <== ䷠ 천산 돈


한편, 중풍 손 괘의 '손(巽)' 자(字)는 본래 신에게 제사드리는 모습을 그린 글자이다. 제사지낼 때 사람은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음으로 ‘겸손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다산 선생은 <주역사전>에서 "전문에 따르면, 손(巽)이라는 글자는 두 개의 '파(巴)'가 '기(丌)'의 위에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파(巴)는 '용사(龍蛇, 용과 뱀)'를 뜻하니 두 개의 '파(巴)'는 두 양(⚌, 二陽)을 표시하고, '기(丌)'는 두 발을 표시한다.(⚋, 1음의 두 조각이 두 발이 된다.)"라고 하였다.

손(巽)의 옛 모양(출처: https://hanziyuan.net)



태풍 빈도는 증가하고 있나?

올 해 여름은 더위가 물러나는가 싶더니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수퍼 태풍 힌남노가  우리나라 포항, 경주, 울산, 부산 등 동남 해안을 강타했다. 포항제철소가 창립 이래 최초로 가동을 중단했고, 이들 지역에서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힌남노의 피해가 커지자 그 이후 발생한 태풍에 대해 국민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었지만 그 이후 태풍들은 다행이 큰 피해 없이 지나간 것 같다. 태풍을 조심하라는 내용의 보도가 잦은 탓에 경각심을 갖기는 했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기후 변화로 인해 태풍 발생 빈도가 늘어난 것은 아닐까?

기상청 통계를 살펴보니 눈에 띄게 태풍의 수가 증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래 표는 태풍발생 현황 통계이다. 30년 동안의 태풍 발생 통계(평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주로 6월~10월에 나타나며 8월과 9월에 집중된다. 평년(30년 평균값) 태풍 발생이 25.1건이고, 이 중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발생 건수는 3.4개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데 비해 10년 평균값이 26.1건 발생하였고,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이 4.0건임을 보면 약간 값이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수치가 대폭 상승했거나 기상 이변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의 수치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51년 통계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오히려 태풍 발생 빈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1951년부터 80년까지 평년값은 26.1, 1961년부터 90년까지는 26.9, 1971년부터 2000년까지는 25.5, 1981년부터 2010년까지는 24.6으로 오히려 태풍 발생 건수는 감소하고 있다. 1951년부터 발생한 통계값으로만 본다면 태풍의 발생빈도는 계속 줄어들었다가 1991년부터 2020년에 소폭 상승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붕괴된 증거가 태풍 발생 빈도 증가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통계를 보면 아직은 쉽사리 판단내리기는 어렵다. 따라서 태풍 때문에 너무 많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풍처럼 밀려오는 미디어에 오염되어 사실이 아닌 것에 현혹되어 두려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태풍발생현황 통계(출처: 기상청 날씨누리 홈페이지)
태풍발생현황 기간별 통계 비교(출처: 기상청 날씨누리 홈페이지)
태풍 기후값 비교(통계출처:기상청 날씨누리 홈페이지ㅖ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높고 파랗다. 천산 돈(䷠)의 큰 바람 부는 여름이 가고, 중풍 손(䷸)의 순한 바람 부는 가을이 왔다.


말의 무게

사람을 판단하는 보편적 기준이 있다. 말과 행동이다. 그래서 말과 행동은 신중해야 한다. 모든 상황에는 나름의 최선이 있다. 노래방에 가서는 신나게 놀아야 하고, 회의 석상에서는 진지해야한다.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을 적절하게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이웃이라고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공부'의 끝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 말고는 없다. 공자가 말한 "종심소육 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마음의 욕구에 따라 행동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 처럼 인생의 말년에 도달해야 할 것은 적절한 말과 행동일 뿐이다.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며 이웃과 평안하게 사는 것,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말과 행동을 적절하게 하는 것은 어렵다. 한 번 뱉은 말과 행동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무겁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말하는 사람이 참 많다. 그런데 무겁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나 드물다. 입은 가볍고, 변명하기 바쁘다. 말은 순하고 맑아야 한다. 중풍 손처럼 스스로를 낮추어 손순하고 간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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