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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Oct 25.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58. 중택(重澤) 태(兌)

음악실 노랫소리

내 옆자리에는 음악 선생님이 계신다. 종일 학생들과 노래를 부르고, 혼자 있어도 노래를 흥얼거린다. 부리부리한 눈에 머리가 벗겨진 선생님의 모습은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다. 수업 시간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선생님은 아이들을 흥분시킨다. 음악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흥이 가라앉지 않아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실을 나온다. 성악 발성을 흉내내며 나오는 사내 아이들은 제법 성악가 같다.

음악을 즐기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과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중택(重澤) 태(䷹, 兌) 괘가 떠오른다. 중택 태 괘는 태(☱)가 중첩된 것이다. 괘 상(☱)이 위로 터진 형상으로 그 모습이 마치 벌려진 입과 같으므로 중택 태(䷹)는 여러사람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 중택 태


중택 태의 여러가지 모양

주역의 58번째 괘인 중택 태는 위와 아래가 태(☱)로 구성되어 있다. 태(☱)는 위가 작고 아래가 크므로 뾰족한 모양이다(음(⚋)은 소(小), 양(⚊)은 대(大)). 또한, 위가 뾰족하기 위해서는 벗겨내고 깎아낸 것이니 '벗김'의 의미가 있다. 다산 선생은 <주역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태(兌, ☱)는 벗겨냄을 뜻한다. 건(乾, ☰)은 곧 의복을 뜻하는데, 태는 건의 겉을 벗겨낸 것이니 그 모양이 벗는 것이 된다. 육체가 옷을 벗는 것을 '탈(脫)'이라 하고 벌레가 껍질을 벗는 것을 '태(蛻)'라고 하고, 수레에서 복토를 벗기는 것을'세(稅)'라고 하니 그 뜻이 동일하다. 

☰건 --> ☱태

또한 태(☱)는 날카로움을 뜻한다. 괘의 성질은 아래가 크고 위가 작으니 그 모양이 날카로운 것이다. 쇠는 윗부분이 작은 것을 '예(銳)'라고 하고, 나무는 윗부분이 작은 것을 '탈(梲)'이라고 한다. 돌은 윗부분이 작은 것을 '예(䂱)'라고 한다. 그 뜻이 동일하다."

중택 태의 모양을 가진 연필과 이쑤시개


논 위의 논

계절풍이 부는 몬순 아시아 지역의 충적평야 지대는 벼 재배에 적합하다. 이 지역의 하천은 여름철에 주기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에 하천 주변의 선상지, 범람원, 감각주 등 충적 평야 일대의 땅은 비옥하다. 생육 기간 높은 기온과 많은 강수량을 필요로 하는 벼는 몬순아시아의 기후 환경과 잘 맞아 벼 재배에 안성맞춤이다. 지역 주민들은 벼를 재배하기 위해 충적평야의 배수가 나쁜 습지를 논으로 만들어 사람이 살기 좋은 곡창지대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주민들은 벼를 재배하며 살고 있으며, 주식으로 그 열매인 쌀을 먹는다. 주민들은 쌀을 물에 불려 찐 ‘밥’을 먹는데,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찰기가 있고 수분이 많은 밥을, 인도, 동남아시아 일대의 지역에서는 찰기가 없고 수분이 적은 밥을 선호한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일대는 한국, 중국, 일본에 비해 기온이 높아 쉽게 밥이 상하기 때문에 수분이 적은 밥을 선호하고, 지역에 따라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 지역은 일본의 스시, 탕의 카오팟,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렝, 베트남의 퍼, 우리나라의 떡국처럼 쌀을 이용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 밖에도 볏집을 이용한 지붕, 진흙과 볏집을 섞어 만든 벽 등 건축물의 재료로 벼를 사용하여 주거문화를 발달시켰다. 

쌀로 주재료로 만든 음식들(스시, 퍼, 나시고렝)

그런데 이 지역에는 벼 재배가 어려운 곳도 있다. 산지가 많고, 상대적으로 평야가 적은 곳은 벼 재배가 어렵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내륙 지역 등은 산지가 많아 벼 재배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주민들은 산을 계단 모양으로 깎아 논을 만들어 부족한 토지를 확보했다. 이러한 논을 계단식 논(Rice Terraces)이라고 부른다.    

논은 땅 위에 물이 고여 있으니 일종의 연못(☱)으로 볼 수 있는데, 주민들은 산을 깎아 논(☱) 위에 논(☱)을 만든 계단식 논은 중택 태(䷹)의 상이다. 계단식 논으로는 우리나라 남해의 다랭이 마을, 중국 윈난성 쿤밍 위안양(元陽)의 3천 층의 계단식 논, 필리핀 루손(Luson) 섬 고지대 이푸가오(Ifugao) 지방의 계단식 논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 주민들은 산지가 많은 거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계단식 논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출처: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이지) 계단식 논은 층층이 놓인 연못이다보니 물고기 양식에도 적합하여 이 지역 사람들은 논에 물고기를 길러 먹거리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 윈난성 쿤밍 위안양(元陽)의 3천 층의 계단식 논에서는 매년 논에서 물을 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물고기를 잡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몬순 아시아의 계단식 (출처: PIXABAY)


마음은 말로써 표현된다. 마음 속에 응어리 진 것(☰)을 바깥으로 풀어낼 때 우리는 즐거운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인간의 자유를 측정하는 기본적인 척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구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개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다.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로 갈 수 없다.   

음악실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한다. 노래를 못 불러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억눌리고 경직된 것을 풀 수 있는 선생님의 허용적인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노래 부르듯 한국 사회의 모든 이들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될 때 우리는 아이들처럼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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