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 작가 Nov 02.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60. 수택(水澤) 절(節): 혼란을 통제함.

괌의 택시 기사

7년 전 1월, 가족들과 함께 괌으로 여행을 떠났다. 괌은 월 평균 27~28℃ 안팎의 기온이 연중 지속되는 곳으로서 1월 낮 기온이 30℃나 되었다. 열대 기후 지역답게 도로에 도마뱀이 어지럽게 기어다니고, 낮이 되면 스콜이 일었다가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아졌다. 바다에는 알록달록한 흰동가리와 바다뱀, 화려한 열대 산호 등 열대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생명체들이 보였고, 사람들은 맑고 푸른 바다에서 스노쿨링, 카약 등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노을이 붉게 물들었고, 사람들은 바베큐를 구우며 가족들과 음식을 즐겼다.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괌의 매력에 흠뻑 빠져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괌의 기온과 강수(출처:NOAA)

어느 날 아내가 괌은 코코크랩이 유명하니 먹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코코넛크랩은 절지동물(節肢動物)인 게의 일종인데 다른 게들과는 달리 코코넛 열매를 먹는 탓에 코코넛 향과 함께 달작지근한 맛이 난다고 했다. 신기한 음식을 맛본다는 기대감으로 가족들과 함께 리조트 앞에서 택시를 호출해서 기다렸다. 택시에 올라타니 반갑게도 기사가 한국분이었다. 행선지를 알려주고 택시기사에게 말을 건냈다.


"일년내내 따뜻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매일 볼 수 있는 괌에 사시니 부럽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택시기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매일이 여름이다보니 세월가는 줄도 모르고 삶이 단조롭습니다. 서울은 지금 겨울이잖아요? 추운 겨울이 혹독하기는 해도 봄이 온다는 기대가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그런게 없어요. 한국에서는 실패를 해도 '내년 봄에는 다시 잘 해봐야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는 겨울도, 봄도, 가을도 없어요. 새로 시작하는 맛이 없는 거죠."

나는 다시 물었다.

"여기 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택시기사는 대답했다.

"내가 여기 온지 얼마나 되었더라? 어디 한번 보자....아이고, 벌써 25년이 지났네요. 정말로 여기 있으면 시간 가는 줄 잘 몰라요."


택시기사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한국처럼 사계절(四季節)이 뚜렷한 곳에서 살다가 일년내내 여름인 괌에 눌러 앉으면 나도 이 택시기사처럼 후회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 하면 고통이 되는 것처럼 여행은 적응 될 만 하면 절도(節度) 있게 끝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절지동물(節肢動物), 절도(節度), 사계절(四季節) 모두 절(節)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주역에서는 수택 절(䷻)에 '절(節)'자가 들어간다. '절(節)'이라는 글자는 '대나무의 마디'를 말한다. 대나무는 마디가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자라다가 마디가 맺혀 단단해져야 그 마디부터 다시 성장할 수 있다.

대나무의 마디(출처:pixabay)

수택 절은 지천 태에서 왔는데, 대나무가 대지를 뚫고 나와 성장하다가(䷗-䷒-䷊, 지뢰복에서 지택림을 거쳐 지천태로 성장) 어느 순간 쑥(3이 5로 이동하여 마디가 길어짐)하고 성장(䷻)하여 멈춘 모양(3,4,5가 멈춤을 나타내는 ☶)이다. 대나무가 자라 성장하는 모습을 쏙 빼닮은 괘가 수택 절(䷻)이다.

䷗ 지뢰 복 - ䷒ 지택 림 - ䷊ 지천 태 - ䷻ 수택 절


용기를 의미하는 택(☱), 무질서함을 나타내는 수(☵) 

수택 절 괘는 위가 물(☵), 아래가 연못(☱)이다. '물처럼 형태가 자유로운 것'이 '연못처럼 생긴 용기'에 갖혀 마디가 생긴 모습을 담고 있다. 연못에 담긴 연못의 물, 보와 댐에 담긴 농업 용수, 정리되지 않은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한 노트북도 수택 절이 될 수 있다.

수택 절은 59번째 괘인 풍수 환과 모양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수택 절이 컵에 물이 모여 있는 것이라면 풍수 환은 컵이 엎어져 물이 쏟아진 모양이 된다.

䷻ 수택 절 - ䷺풍수 환

절(節) 괘는 <서괘전>에 “환(煥)은 이산(離散)됨이니, 물건은 끝내 이산(離散)될 수 없으므로 절(節) 괘로 받았다.”라고 하였다. <주역전의>에 "괘 됨이 못 위에 물이 있으니, 못의 용납함은 한계가 있다. 못 위에 물을 둠에 가득차면 용납하지 못하니, 절제(節制)가 있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절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안전을 위한 절(節)

있어서는 안 될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는 조기를 내걸고 검은 리본을 패용했다. 온 국민이 침울함을 느끼는 가운데 참사의 책임을 두고 세상이 시끄럽다.

군중은 물과 같다. 좁은 곳에 많은 인파가 몰릴 때는 물에서 난류가 일듯 어지럽게 섞인다. 감 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를 안전하게 통제하는 것은 상식이다. 법규와 제도(☱), 안전 요원의 물리적 통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자율적 규제(☱)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모든 장치가 작동을 멈춰버렸다.

자유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이런 것이 아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제하고 누구나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해야 최소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세월호의 슬픔이 가시기 전에 이태원 젊은이들을 가슴에 또 묻는다.

  




이전 09화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