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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Nov 30.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62. 뇌산(雷山) 소과(小過): 호리천리

산 너머 아득한 새소리

끼륵끼륵 소리가 나서 올려다 본다. 기러기 떼가 먼 산을 넘어간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무리로 보인다. 소리가 처량하여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바라본다.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처럼 새들은 그 넓은 하늘에서 소리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뇌산(雷山) 소과(小過) 괘가 보인다. 

䷽ 뇌산 소과

뇌산 소과(䷽)는 위는 우레, 아래는 산으로 이루어진 괘이다. 산 너머(☶)로 무언가가 지나가서 소리의 잔상(☳)만 남은 상이다. 

뇌산 소과는 산뢰 이(䷚)의 교역(交易)인데, 산뢰 이의 상괘인 산(☶)이 아래로 가고, 하괘인 뢰(☳)가 위로 올라가면 뇌산 소과가 된다. 산뢰 이의 6이 뇌산 소과에 이르면 3이 되고, 산뢰 이의 1이 뇌산 소과에  이르면 4가 되니, 산뢰 이의 6과 1의 양이 뇌산 소과가 되면 서로 스치듯 지나쳐 3과 4가 되니 멀리 '작게 지나친 것(小過)'이 된다.  

 ䷚ 산뢰 이 - ䷽ 뇌산 소과


갈길을 달리한 도시의 운명

<사기>에 호리천리(毫釐千里)라는 말이 나온다. '실지호리 차이천리(失之毫釐, 差以千里)'라는 말에서 온 이 사자성어는 '털끝 만큼을 잃으면 후에 천리만큼 커다란 차이로 벌어진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잠깐 스쳐지나갈 것(小過)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일로 말미암아 큰 사건으로 번지는 일을 우리는 삶에서, 역사에서 경험하고 있다. 뇌산 소과 괘에서의 3과 4가 스쳐지나가지만 이 인연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은 일, 작은 만남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지표공간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말미암아 도시의 운명이 뒤바뀐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충청남도에 위치한 도시 '공주'와 한밭 '대전'에 관한 일이다. 공주는 백제 시대 이래로 충남의 중심지였다. 백제의 도읍지이자 조선시대 충청 감영이 있었던 공주는 행정, 군사,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서 역사 이래 매우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조선 말에는 충남도청이 공주에 들어섰고, 금강 수운을 이용한 '공주-부여-강경'은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 경제의 3대 핵심축을 담당했다. 반면 대전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논과 밭, 넓다란 터만 있었던 대전은 공주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초라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이 많은 공주가 쇠퇴하고, 변두리 대전이 번성하게 된 계기가 발생했다.

구한말 일제는 경부선 철도 노선을 서울-수원-천안-공주-부산으로 계획하였다. 일제는 각 지역의 중심지를 연결하여 한반도를 남북으로 잇는 철도 교통의 중심축을 건설하려고 하였다. 일제는 1904년 러일 전쟁을 치러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고 했기 때문에 병참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경부선 철도를 빨리 건설해야만 했다. 각 지역의 중심지를 연결하여 노선을 설정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유리했기 때문에 일제는 공주를 초기 노선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 계획은 바로 시행되지 못하고 수정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조선의 기득권 계급이었던 양반과 유생들이 반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일설에는 철도가 도입된다는 소식에 전국의 유생들이 반대했고, 특히 공주의 양반들과 유생들은 극렬히 반발하였다고 한다. 병참기지를 서둘러야 했던 일제는 반대 세력과 대립하며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다른 선택지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대전이었다. 공주와는 달리 대전에는 유력자나 유생들이 적어 상대적으로 철도 부설에 대해 반발이 적었고, 육상 교통로를 건설하는데 지리적으로 공주보다 크게 나쁘거나 걸림돌이 만한 요인이 적었다고 한다. 결국 충남의 중심지인 공주를 제외한 경로가 확정되었고, 이후 두 도시의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 

1945년 철도노선도(출처: 국가기록원). 이 지도에서는 철도 노선에 공주가 철도 교통과 인연이 없음을 보여준다.

공주는 지방 중소 도시로 머물며 저성장한 반면, 대전은 광역시로 승격되어 꾸준히 인구 및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철도 노선 선정 여부'라는 역사적 사건이 당시로서는 털끝만큼의 차이였으나 100년이 지난 후 두 도시는 하늘과 땅 차이로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공주시는 2022년 10월 현재 인구가 102,751명인데 비해, 대전 인구는 1,446,602명으로 약 14배 차이가 나고 있으며, 지역 내 총생산은 공주가 3조 7천억원(2019),  대전이 44조 4천억원(2020)으로 경제적 차이가 얼마나 큰 지 보여준다.

2019 충청남도 시군별 지역내총생산(출처:충청남도 홈페이지)

만약 유력자들이 경부선 노선을 확정지을 때 공주에 철도 시설을 유치했다면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번영한 공주를 만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털끝 만큼을 잃은 후 그것이 천리 만큼의 후회가 된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순간 순간 스쳐지나가는 일들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짧은 만남

2022학년도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 코앞이다. 지난 주 학교의 전출 교사를 확정해 서류를 교육청에 보냈다. 선생님들의 갈 길이 엇갈리는 시점이다. 어떤 선생님과는 짧게, 어떤 선생님과는 길게 학교라는 공간을 공유했다. 

짧은 만남은 아쉽다. 긴 만남은 더욱 아쉽다. 좋은 관계 맺었으니 가는 길 달라도 너무 멀리는 가지 말았으면(小過). 뇌산 소과를 읽고 짧은 인연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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