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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Dec 04.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63. 수화(水火) 기제(旣濟): 아이슬란드의 지열발전

일을 마칠 무렵

벌써 12월이다. 되돌아 보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낯선 내용의 공문들, 갑작스런 휴직자 발생, 첨예한 교직원 내 갈등, 3년 만에 찾아온 종합 감사,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 운영,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성적 처리,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관리, 각종 민원 처리 등 학교의 교무부장 업무는 어느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었다. 만만치 않은 이벤트 덕에 2022학년도는 쏜살 같이 지나갔다. 매 순간 떨림의 연속이었다. 

어려운 업무 속에서 우리 부서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누군가의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엄마, 아빠로서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학교 조직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었다. 일이 생겼을 때는 야간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방학도 반납하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주었다. 출신 학교, 출신 지역, 나이, 성격 등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며 위기를 하나씩 극복했다. 

어떤 조직이든 디디고 오르려는 자, 눈꼽만큼의 이익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자, 자신의 일을 남에게 미루는 자, 게을러 자신의 일을 하지 않는 자 등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상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동료들은 어느 하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다. 한 해 동안 나는 '화합(和合)'과 헌신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행정 실무사 선생님(⚋), 인사 담당 선생님(⚊), 특수 선생님(⚋),  성적 담당 선생님(⚊), 생기부 담당 선생님(⚋)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성비가 3:3. 역할은 제 각각, 나이는 천차만별이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부서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수화(水火) 기제(旣濟)의 상을 떠올린다.

䷾ 수화 기제

<주역전의>에 "괘 됨이 물이 불 위에 있으니, 물과 불이 서로 사귀면 쓰임이 된다. 각기 그 쓰임에 마땅하므로 기제(旣濟)라 하였으니, 천하(天下) 만사(萬事)가 이미 이루어지는 때이다."라고 하였다. '기제(旣濟)'라는 말은 '이미 건넜다.'라는 말이다. 험난한 물줄기를 건넜으니 어려움을 이겨냈음을 의미한다.

물과 불처럼 성질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서로 다른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하지만 물(☵)은 내려가 불(☲)을 만나고, 불은 물을 올라가 물을 만나니, 서로 만나 작용하여 성공을 이끌어 낸다. 또한, 수화 기재(䷾)의 여섯 효들은 음(⚋)은 음의 자리(2,4,6)에서, 양(⚊)은 양의 자리(1,3,5)에서 모두 충실히 자리를 바르게 지키고 있으니 일이 성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불과 물의 조화, 아이슬란드

북유럽에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가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이 섬나라는 그린란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고위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북위 63도~66도 사이) 삶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아이슬란드(Iceland)'라는 이름 그대로라면 이 나라는 국토 전체가 불모지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1인당 국민총생산은 2021년 기준 세계 순위 2위로 매우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IMF 통계) 인구 23만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는 척박해 보이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해서 소득을 높일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이슬란드는 물과 불의 합작품을 토대로 발달한 나라이다. 북대서양 해류가 적도의 온기를 머금고 고위도의 아이슬란드까지 올라와 차디찰 수 있었던 곳의 기후를 온화하게 해주었다. 또한, 대서양 중앙 해령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열 덕에 아이슬란드는 차가운 대지 대신 온천을 머금은 온기 넘치는 땅이 되었다. 그 덕에 따뜻한 해류로 인해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대서양 중앙 해령은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아이슬란드를 이해하고자 할 때 꼭 살펴봐야 할 것이 대서양 중앙해령이다. 아이슬란드는 북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의 경계선인 대서양 중앙 해령에 위치해 있다. 대서양의 해저에 있는 대서양 중앙 해령은 북극해에서부터 아프리카의 남쪽 끝까지 긴 산맥의 형태로 뻗어 있는데, 대서양 중앙 해령의 일부분이 해수면 위로 노출된 부분이 아이슬란드이다. 아이슬란드는 지리적으로는 하나의 섬이지만,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판 위에 놓여 있다. 아이슬란드는 육지 위에서 두 판이 확장되는 지역으로서 아이슬란드의 중심부를 지나는 대서양 중앙 해령의 틈이 매년 약 15㎝씩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벌어지는 틈으로는 해양 지각의 하부에서 고온의 마그마가 상승하면서 새로운 지각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고, 경계부에서는 화산활동과 지진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 덕에 아이슬란드에는 온천, 간헐천 등 화산 지형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화산 활동이 아이슬란드의 경제 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서양중앙해령이 지나가있는 아이슬란드(좌). 열곡대를 따라 화산,온천, 간헐천(우 사진) 등 화산지형이 분포하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지열 발전 의존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열발전은 땅 속의 지열(☲)을 이용해 물(☵)을 데워 만들어진 고압의 수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아이슬란드는 대서양 중앙해령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을 활용하여 지열발전을 활성화하였으며, 자국내 주택 난방 대부분을 지열 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또한, 아이슬란드는 지열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하여 알루미늄 산업을 발달시키고 있다. 아이슬란드 수출 구조에서 33%에 해당하는 생산품이 알루미늄(2020)이다. 알루미늄 산업은 제련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데 아이슬란드는 지열 발전으로 생산한 잉여 전기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알루미늄 산업에 투입함으로써 국민 소득을 늘릴 수 있었다. 

2016 기준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의 에너지 구성 비교(출처:에너지경제연구원)

지열(☲)과 물(☵)의 조화를 이용하여 이보다 더 잘 이용한 사례가 있을까 싶다. 수화 기제(䷾)란 지열 발전을 이용해 어려움을 극복한 아이슬란드를 두고 말한 듯 싶다.


유자가 말하기를

2022 카타르 월드컵의 대한민국-포르투갈 전의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아침 일찍부터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돌려보았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누구 하나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축구 경기에 공격수만 11명이 배치되어 있다면 경기가 될 리 없다. 적절한 위치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역할을 해 온 모든 선수들의 노력이 만만치 않은 상대인 포르투갈을 이길 수 있었다. 

우리 대표팀은 이제 큰 물(기제 괘의 2,3,4)을 건넜다(기제, 旣濟). 조화로움 속에서 큰 일을 해 냈다. 그런데 약간 눈에 밟히는 것에 보였다. 황희찬 선수가 골 세레머니를 과하게 하여 옐로우카드를 받았다. 더 큰 상대인 브라질과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 조급함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유자가 말하였다. "예의 작용은 조화(調和)가 귀함(貴)이 된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크고 작은 지위에 있는 이들이 모두 이에 말미암았다. 그러나 행하지 못할 바가 있으니, 조화의 귀한 것만을 알아서 화(和)만을 하고, 예(禮)로써 절제(節)하지 않으면 또한 행해서는 안된다."

화수 기제의 덕이 연상되는 <논어>의 구절이다. 월드컵 끝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 대표팀 모두가 수화 기재의 덕처럼 조화롭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 수화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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