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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Dec 24.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1. 중천 건(䷀): 세상에 가득 찬 얼음

세상에 가득 찬 얼음

한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곳곳에 눈과 얼음이 가득하다. 자동차의 앞 유리에 얼음이 결정을 맺고 펼쳐져 있다. 확대해서 관찰해보면 그 모양이 놀랍다. 규칙적인 각도와 패턴이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확장되어 기하학적 곡선과 꼭지점을 만들어 낸다. <중용>에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단서를 만드니,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천지에 밝게 드러난다."라고 하였는데, 얼음 결정이 시작이 되어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 강이  얼고, 바다가 얼게 되었다.

얼음 결정(출처:pixabay)


온 세상이 빈틈없이 얼음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니 중천 건이 떠오른다. 중천 건 괘(䷀)는 천(☰)이 위아래로 거듭되어 만들어진 괘이다. 천(☰)은 세개의 효에 빈틈이 없어 얼음의 상을 지니고 있는데, 중천 건의 괘는 여섯 개의 모든 효에 빈 틈이 없으니 온 세상에 펼쳐진 얼음 세계의 형상과 같다.

䷀ 중천 건


건(乾)은 우주를 관통하는 기(氣)

다산 정약용 선생의 <주역사전>에 따르면  건()은 기()로서,  옛 전서에서는 '()'자를 아래 글자들로 사용했다고 한다. 건(乾)을 이루는 왼쪽의 �와 오른쪽의 乞은 모두 아래의 '기'자를 예서로 바꾼 것이다. 즉, 만물의 생성은 모두 기(氣)의 변화를 받아 생성된 것이며, 만물을 생성시키는 주체인 건의 기가 하늘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곤(坤)과 더불어 짝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 괘(䷀)에 '건(乾)'이라는 괘명이 붙은 이유일 것이다.

옛 전서에서 기(氣) 자로 사용되었던 글자들


건 괘에는 우리가 앞서 공부한 모든 괘의 모양이 들어가 있다. 모든 괘를 겹쳐보면 건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바다, 강, 불, 산, 우레, 바람 등 삼라만상이 모두 땅에 담겨 있지만 그 땅 또한 거대한 우주의 일부분인 것처럼 건(䷀)은 세상 모든 상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단순히 '파란 하늘'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경영하는 '신'으로 묘사를 하기도 하고, 우주를 운행하는 지극한 원리로도 이해한다. 

중천 건 괘는 지뢰 복 괘로부터 발생하여, 양효가 하나씩 쌓여 임괘, 태괘, 대장괘, 쾌괘를 거쳐 만들어지는데, 그 운행이 매우 성실하고 굳건하다. 빈틈 없이 시간이 운행하고, 성실하게 물리적 힘이 작용함이 담겨있다.

 <중용>에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극한 성(誠)은 쉼이 없다.'했으니 이것이 우주를 운행하는 도(道)이고, 하늘이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은 모든 시간이며, 건(䷀)인 것이다.

䷗복 - ䷒임 - ䷊태 - ䷡대장 - ䷪쾌 - ䷀건 


글을 마치며 

중천 건으로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를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천 건의 뜻이 너무 깊고 웅장하여 감당이 되지 않아 글의 마지막 꼭지로 돌리게 되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보니 맨 마지막으로 중천 건을 돌리게 된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억지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느끼지 않은 것을 글에 담고 싶지 않았는데, 앞의 63괘를 둘러보고 나서 건 괘를 바라보니 내 깜냥으로는 처음부터는 어려웠겠다 싶다.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집필을 시작한지 2년 반이 지났다. <주역>의 64괘에 나타난 상(象)을 주제로 지표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리적 의미를 찾아보기로 뜻을 정했다. 하지만 밑천은 적고 경험은 부족하니 좋은 글이 나올리 없었다. 어떤 것들은 내 주변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인 반면 어떤 것들은 몇 달 동안 고민을 했지만 찾아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만 둘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리교사의 눈으로 주역을 바라보았을 때 어떤 글이 나올 수 있는지가 궁금하여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진전이 더딜 때마다 성백효 선생님이 역주하신 <주역전의>, 대산 김석진 선생님의 <주역강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쓰시고 방인 선생님이 옮기신 <주역전의>, 경기홍역학회 최정준 선생님의 인터넷 강의, 성태용 선생님의 EBS 기획시리즈 주역 강의, 홍익학당 윤홍식 선생님의 인터넷 강의, 초운 김승호 선생님의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 인문학> 등을 참고했다. 이분들의 저작과 강의가 없었다면 <주역>이라고 하는 텍스트를 '나'의 관점으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를 집필하며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된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그 의미가 새롭다. 파도의 일렁임은 단 한 번도 같지 않지만 그것이 바다라는 사실은 변함 없듯이, 인생사 변화무쌍하지만 인간도 땅 아닌 적 없고 하늘 아닌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병들 때도, 죽음에 이르를 때도 그것이 세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건이며, 그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글을 마칠 시간이 온 것 같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신 성공회대학교 임규찬 교수님, 고병헌 교수님, 한재훈 교수님, 플랫폼을 지원해준 '브런치' 관계자분들, 그리고 응원을 아끼지 않고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신 독자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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