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관한 짧은 이야기

하루의 한 가운데, 가장 양지바른 자리에 점심밥이 놓여있다.

by strangecowcow

망중한이란 말을 사랑한다. 바쁜 와중의 한가로움. 아무리 바빠도 잠깐의 틈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틈에서 쉬어가지 못할 게 또 무어냐 하며 허허 웃는 무림고수가 떠오르는 말.


무림고수와는 거리가 멀지만, 망중한만큼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수련하고 있다. 점심시간 10분 전엔 일에서 물러나 호흡을 가다듬고 메뉴를 고른다. 왠지 하와이에 가고 싶은 날엔 포케. 친한 동료가 우울해 보이는 날엔 그가 좋아하는 만둣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지 않고선 오후를 제대로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날엔 걸어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점심시간이 오면 만원 엘리베이터에 몸을 밀어 넣고 공들여 고른 식당으로 간다. 키오스크와 씨름하고 숟가락 젓가락을 세팅하고 물을 따르는 약간의 푸닥거리 끝에 마침내 밥을 마주한다. 오전에 붙잡고 있던 일은 좀 전의 부산함으로 인해 벌써 저만치 물러나있다.


정신없는 오전은 지나갔고 더 정신없을 오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은 망중한의 시간이다.

하루의 한가운데, 가장 양지바른 자리에 점심밥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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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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