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평가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성장판은 닫히고 목에 주름이 지기 시작한 어른들이 성장을 검사받고 있다

by strangecowcow

성과평가, 혹은 ‘성장에 대한 피드백’. 요즘엔 후자가 트렌드인 듯하다. 뭐가 다르냐 묻는다면, 글쎄, 판결과 고해성사의 차이쯤 될까.


연말 연초의 고해성사. 비교 대상은 작년 이맘때의 나. 지난 1년 동안 나는 성장했을까. 늙은 것은 확실한데 성장은 잘 모르겠다. 작년에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긴 했지만 그건 그냥 스스로와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법을 배우게 된 덕이지 뭘 더 잘하게 되어서가 아니다. 세상에선 이런 비겁도 그럭저럭 ‘노하우’로 쳐주는 모양이지만.


서로의 성장을 위해 동료에게도 피드백을 남긴다. 진즉에 다 커버린, 성장판은 닫히고 목에 주름이 지기 시작한 어른들이 성장을 검사받고 있다. 괜히 또 누가 울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인다.


성장을 위해선 자기 계발에 힘을 써야 하고,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기 위해선 더 성장해야 하는 동어반복의 트랙을 달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자아는 점점 비대해진다. 그 무게를 건사하느라 숨이 가빠온다.


성장을 털어놓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아니,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다. 지난 1년을 검사받는 대신 그냥 1년 치의 삶으로 두고 싶다. 크고 작은 선택에 진심을 다하면서도 성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삶을 상상하고 싶다. 우리가 바람과 햇볕과 비 냄새와 겨울의 한기를 하나하나 기념하진 않지만, 이 모두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읽어내고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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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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