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 관한 짧은 이야기

치열하게, 쓸모없게

by strangecowcow

중간 관리자가 되고 나서부턴 부쩍 회의가 많아졌다. 내가 리드하는 팀의 주간회의도 주최해야 하고, 타 팀과의 업무 조율 미팅에도 들어가야 하고, 대행사와의 미팅에도 참석한다. 한 달에 한 번씩 팀원들과 일대일 미팅도 한다.


온갖 회의에 들어가다 보면 정작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시작하게 된다. 회의가 많은 날엔 일을 엄청 많이 하게 되거나, 일을 아예 안 하게 된다. 그렇다고 회의를 아예 없애자니 해야 할 일과 안 할 일이 구분이 안된다. 여럿이서 모여서 함께 일을 한다는 건 얼마나 열받는 일인지.


매주 일요일 밤마다 어떻게 하면 회의 시간의 밀도를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무조건 30분 안에 회의를 마치겠다는 의지를 다 같이 불태우자는 뜻으로 모래시계도 사보고, 오후에 했다가 오전에 했다가 저녁에 했다가 시간도 바꿔본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면 한 마디씩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가버리니깐 4인 이상 모이는 회의는 서면으로 대체하기로도 해본다. 그렇게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 봐도 여전히 불만이 생긴다. 뭔가 비효율적인 것 같다.


이쯤 되면 '합의에 다다를 수 있다'는 회의의 전제 자체가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인간은 소통의 동물이 맞나.


어쩌면 우린 서로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건지도 모른다. 회의는 그 믿음을 지탱하기 위한 의례고. 회의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난잡함 위에서, 진짜 일을 시작한다. 회사를 다닌다는 건 다 이런 거겠지. 다 같이 적당히 관리된 쓸모없음을 꾸역꾸역 견디며, 무언가 더 큰 일을 해내겠노라 애를 쓰는 거겠지.


회의와 회의 사이, 잠시 회사 주변을 산책한다. 입을 다물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중추신경계의 긴장을 풀어준다. 이렇게 치열하게, 쓸모없게 입을 놀리는 것도 이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액티비티라 생각하며 아젠다를 점검한다. 다음 회의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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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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