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어느새 1년이다. 원래 계획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받아서 하는 잡식성 노동자가 되었다. 내가 지금 백수인지, 프리랜서인지, 뭔지 모를 아리송한 상태로 시간이 쌓이는 것이 처음엔 불안했지만 요즘은 괜찮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까 사랑하진 못해도 미워하진 말아야 한다고 도 닦는 소리를 숱하게 되뇐 덕분에 이제는 섣불리 희망에도 절망에도 몸을 내맡기지 않는, 그런 심드렁한 안온함을 즐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럭저럭 살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밥벌이를 시작한 친구들도 딱 나만큼 그럭저럭 살게 된 것 같다. 1년 전엔 취업한 회사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제각각이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그렇지도 않다. 다들 아침엔 일하러 가고 퇴근하면 운동 좀 하고 좀 주말엔 맛있는 음식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서, 비슷하게 사는 듯했다. 들쭉날쭉한 삶의 그래프가 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풍화되어 평평해진 걸까? 아니면 달라봤자 정규분포 안이었던 걸까? 1년 전에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죄다 그대로인데, 이제는 비슷하단 느낌이 압도적이라는 게 이상했다.
오늘은 휴가를 쓴 J가 같이 점심을 먹자며 찾아왔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J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우리는 지금 여전히 같은 도시에 있고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나는 J의 집을 찾지 않는다. 이유를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냥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J의 차를 타고 학교 근처의 국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학교 근처에 와서 밥을 먹었는데도 학교 이야기는 둘 다 거의 하지 않았다. J는 요즘 야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출퇴근이 없으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육개장 맛이 좀 변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비싸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서로 늙었다는 이야기를 하다 넌 그대로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벌이가 좋은 J가 밥을 샀고 나는 커피를 샀다. 점심시간 1시간을 보낸 다음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고 J는 세차를 하러 갔다.
J와 나의 점심시간은 즐겁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웠지만 밋밋하기도 했다. 어색한 사이끼리 대화할 때 생기는 싱숭생숭함과는 같은 듯 다른, 그럭저럭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닿았을 때 생겨나는 그런 밋밋함이었다. J를 보내고 나니 우리는 모두 비슷하게 그럭저럭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럭저럭. 불안에 시달리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길 관두고 심드렁한 안온함에 젖어들면 삶의 운동에너지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건 물리법칙과도 같은 건조한 사실이다. J와 나는 비슷하게 삶의 운동에너지가 감소하는 시기를 맞은 것뿐이다. 물리법칙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감상을 덧붙이는 건 멍청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물리법칙의 건조함이 왠지 관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아 서운하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밋밋함 이상의 무언갈 나누고 싶다. 같이 뭐 먹고살지를 고민하고 위로하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던 그럭저럭 이전의 점심을 먹고 싶다. 그걸 위해서라면 불안하기만 했던 1년 전 갓 퇴사했을 때의 마음을 다시 겪어도 괜찮을 것 같다. 꼭 한 번 정도는 그런 용기를 더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