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방인 Nov 10. 2020

까라면 까는데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가끔, 아니 자주 말도 안 되는 지시가 내려질 때가 있다. 불합리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며 상황에 맞지 않는 지시들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지시를 내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설명을 하며, 이해를 구하며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지시에는 이유가 없다. 명령에는 지켜야 하는 당위성만 있을 뿐이지,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객관성은 찾기 힘들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갖다와야하는 군대문화에 익숙해져일까. 까라면 까야 되는 것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것이다.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해서 하긴 했는데, 문제는 결과이다. 시키는 대로 해서 했으니까 왜 이렇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과 변명은 필요하지 않다. 하라고 해서 했다는 게 이유이고 설명이다.


1. 시키는 대로 해서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일방적인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키는 대로만 일을 했다는 불만은 있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더 이상 불평하기가 힘들었다. 본인의 혜안과 본인의 탁월한 안목으로 일이 이렇게 잘 진행되었다라고 말하는 상사의 말은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훌륭한 지휘로 인해 훌륭하게 연주가 마무리되었으니, 불평과 불만은 그냥 고이 접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일의 공은 오롯이 지시를 한 상사에게로 돌리기로 한다.


2. 시키는 대로 해서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사실 나는 억울했다. 나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하라고 하는 대로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난감하다.


2-1. 결과가 좋지 않은 책임을 상사가 진다고 한다. 본인의 지시로 인해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책임을 지는 것도 본인의 몫이라고 한다. 일방적으로 일을 지시할 때는 일의 처리방식에 불만이 있었고 상사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어쨌든 벌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느껴왔던 불만이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다. ‘지시하신 대로 했지만, 사실 제가 한번 더 검토해보지 못한 책임도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함께 책임을 나누어보려는 마음도 은근히 생긴다. 물론 일방적으로 지시하시기 전에 나의 의견도 좀 들어보셨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어쨌든 나의 책임이 많지는 않다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하는 동시에 다음에는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지 않으면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다라는 바램도 가져보게 된다.


2-2. 결과가 좋지 않은 책임을 나에게 돌리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지우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을 고집해 한 일도 아닌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시지 않으셨냐라고 반항을 해 봤더니, 왜 다른 방법은 검토해보지 않았냐라고 도리어 화를 내신다. 분명하게 지시를 하셨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틈도 주지 않으셨다라고 항변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있냐라는 핀잔뿐이었다.


사실 일이 잘 되고 성과가 났을 때는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작은 문제는 있다. 소통도 없고 공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한다라는 것 그 자체가 문제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 앞에서는 과정상의 문제는 감춰지기 마련이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발생한다. 매우 크게 발생한다. 과정상의 문제에 결과의 문제까지 더해져 곱절의 문제로 발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넘겨버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음에 잘하면 되고, 실패를 거울삼아 성공으로 가는 한 발짝을 내디뎓다는 소중한 경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책임감이란 것은 통상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려는 마음가짐으로 통용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자제의 영역에 가깝다. 일방적인 지시는 자제의 영역에서 생각해 볼 문제이고, 결과에 대한 뒷수습은 책임감의 영역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일이 잘못된 것에 대해 일단 수습을 해야 한다. 고장이 났으면 고쳐야 하고, 계약에 실패했으면 실패한 원인에 대한 분석을 해야 한다. 고치는 것이 책임감이고 실패를 분석하는 것이 책임감이다. 일방적인 지시를 한 나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수행한 너에게 원인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책임감이 아니다. 이는 실패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도피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다.


물론 일방적인 지시에 맞서 아닌 건 아니다라고 얘기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에 아닌 건 아니다라고 얘기했다가 혼만 나거나, 열심히 아니다라고 해봤자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하고 내 입만 아팠던 경험이 있을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연차가 높아지고 직급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질 일도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나, 불행하게도 권한만 많아진다라고 오해와 착각을 하는 상사들이 없지 않다.


상사는 혼자서 다 책임을 져야 하느냐라고 얘기한다면 당연히 대답은 ‘NO’이다. 책임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지시에 대한 이유와 지시에 대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 결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부하직원과 같이 찾아나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방적인 지시는 책임도 못질뿐더러 분란만 조장하게 된다.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려면 책임까지 다 지던가, 책임을 다 지기 싫다면 일방적인 지시는 하지 말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하는 게 좋겠다.


이전 15화 후배가 선배가 되어감에 따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