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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Sep 09. 2021

결정은 그분께서

이스라엘  다윗이 비겁한 방법(기혼녀였던 여자의 남편을 전쟁의 선봉장으로 세워 죽게 함으로써)으로 아내를 맞이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원인 모를 병에 시달려 생사를 오락가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다윗 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결국 아이는 죽게 되었다. 아이가 죽자 다윗 왕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는 모든 신하들의 예상과 다르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염을 깎고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였다. 몇 날 며칠 슬퍼하던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죽으면 다윗왕이 더욱더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하   명이 오히려 아이가 죽고 나서 의연해진 다윗 왕에게  이유를 물었다. 다윗왕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이가 병에 걸렸을 때는 혹시 하나님이 아이를 살려주실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기도했지만, 아이가 죽은 후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아이를 데려가셨고 내가 슬퍼해도 아이는 돌아올  없음을 아는데  이상 슬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상사들과 종종, 아니 자주 부딪히게 된다.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한 “(확정이 되기 전의 계획, 방안, 대안 등을 의미한다. 이하 “이라고 한다)” 마련하기 마련이다. 담당자 혹은 실무자의 역할은 바로  “ 만드는 일이다. 확정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해봤자, 그렇게 하지마라는 지시가 내려올 수도 있다. 결국 실무자들의 역할은 결정이 아니라 “안” 마련하는 일이다.


다윗은 실무자였다. 아무리 왕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을 결정할  있는 권한이 다윗에게 있지는 않았다. 이러한 점을 다윗이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과정을 통해 탄생하였다 하더라도 병에 걸린 아이를 살리는 “안”을 기획하였으나, 결국 그 “안”은 폐기되고 아이는 죽게 되었다. 아이가 죽은 후 다윗은 자기의 “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안”을 마련하는 것까지가 자기의 역할이고, 결정은 자기의 몫이 아님을 알았다. 역할에 대한 확실한 구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윗왕이 후대에 높이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몫과 역할을 정확히 알고 정확히 그에 맞추어 행동했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고 “안”을 만드는 일을 대충 해서는 욕먹기 십상이다. 어차피 나는 결정할 권한도 없어, 그냥 대충 만들어가면 윗분께서 알아서 결정하시겠지라고 했다가는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했다가는 ‘너는 아무 생각이 없냐’, ‘꼼꼼히 검토한 것 맞냐’ 등등 꾸지람과 비난만이 기다릴 뿐이다. ‘어차피 제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맘대로 결정하실 꺼잖아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다. ‘너는 너 나름대로 열심히 해라, 결정은 내가 한다’라는 윗분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게 회사이고 계급사회이며 조직이 유지되고 굴러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무자는 실무자일 뿐, 결정권이 없다라는 사실이 물론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최적의 “안”을 윗사람도 최적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결정이 된다면 좋겠으나, 그러지 않을 때가 많다. 여러 가지를 검토해보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최적의 “안”을 만들었고 이 “안”이야말로 지금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결정권자께서는 그러한 나의 고민과 생각을 일순간에 무시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에 열심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결정을 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실무자가 할 일이다. “안”을 만드는 일과 결정하는 일은 결코 별개의 일은 아니다. 실무자의 검토를 통해 결정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마련될 수 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그 일을 마무리 짓는 일은 윗분에게 맡겨드리면 된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이는 결정권자에게 책임이 있다. 윗분들에게는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더불어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부여되기 마련이다.


상처 받지 않고 기분 나쁘지 않게 “안”을 마련하기 위해 흔히 하는 방법으로는 “안”을 여러 가지로 만드는 것이다. 단 하나의 “안”을 만들어간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이다. 맞거나 틀리거나. 여러 가지 “안”을 만들어간다면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고민도 하게 되고, 맞냐 틀리냐가 아니라 어떤 것이 맞냐라는 실무자와 결정권자가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방법과 저 방법을 비교함으로써 결정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생각을 가질 수가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안” 중에서 우선순위, 즉 실무자가 베스트라고 생각하는 “안”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100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 결정해주십시오라고 하는 건 선택을 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없다. 아무런 “안”이 없는 것과 동일하다. ‘여러 가지 “안”을 마련해보았고 가장 좋은 “안”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1안이라고 생각하니, 검토해주시고 결정을 부탁드립니다.’가 실무자와 결정권자가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권한이라고 하는 것은 양면의 칼날 같은 것이다.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책임도 뒤따르는 일이다. 이에 결정할 권한이 없다라고 해서 실망하거나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그냥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할 일과 역할에 대해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을 것이고, 그러한 실무자일 때의 경험이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작용해 좋은 결정권자로써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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