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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pr 28. 2021

후배가 선배가 되어감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둘 이상 모인 곳이라면 상하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집에서도 형이 있고 동생이 있다. 가족들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하관계라고 한다면 상하관계의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형이고, 형보다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동생인 것이다. 형이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이 있고 의견이 맞지 않는 순간이 있다 하더라도, 형은 나보다 형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의견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억울하면 먼저 태어나는 수밖에는 없는데 이미 태어난 걸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린다고한들 다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는 회사에서의 상하관계이다. 회사에서의 선배는 태어나면서부터 선배는 아니다. 같은 회사에 입사를 했기 때문에 선배이다. 같은 회사라는 공통분모가 없으면 어쩌면 평생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았을 사이이다. 우연찮게도, 공교롭게도, 재수 없게도 같은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선배와 후배라는 관계로 매일매일을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다투게 된다. 혈연이라는 가장 강력한 인연을 가지고도 늘상 다투는 게 사람 사이일진대, 사연(社緣-회사에서 맺어진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가 안 다툰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다투게 되는 이유는 너무나 무궁무진하다. 선배는 후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후배는 선배의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선배는 후배의 일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고, 후배는 선배의 사고방식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자가 효율적이라고 느끼는 방식이 다를진대, 이를 선배가 후배에게 강요함에 따라 문제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선배의 조언이 후배는 간섭으로 느껴지고, 후배의 방식은 선배에게는 참견거리로 느껴진다.


선배이지만 직급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참견과 간섭이 용인된다. 팀장의 간섭은 지시가 될 수 있고, 팀장의 조언은 리더로서의 역할로 이해될 수 있다. 문제는 직급이 없는 선배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험이 부족하고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는 선배의 조언이 고맙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직원에게는 선배의 조언이 간섭으로 느껴질 여지가 많다. 특히 과거에 했었던 방식으로 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옛날 얘기만 하는 꼰대로만 비춰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고라인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업무를 하는 동일한 팀원이라는 입장에 있으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고, 혹시 내가 도움을 청할 때만 조언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같다.


선배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있다. 열심히 하고 일을 잘하고 있으나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제안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팀장도 아닌 내가 후배의 업무에 관여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또 후배는 이러한 간섭을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에는 선배의 도리를 다하지 않아 무책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1초의 고민도 없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마음껏 질러버리는 선배들도 있다. 극단적인 케이스는 제외하고 생각해보자(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 늘상 있는 케이스라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사실 같은 회사에 있더라도 업무를 같이 하지 않았을 때는 다툼은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 부서의 선배보다는 가끔 만나 술 한잔씩 하는 옆 부서의 선배가 그래서 더 편하고 더 친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업무를 공유하고 때로는 업무를 같이 해야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의견 충돌이 발생할 때도 있고, 각자의 영역에 대해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어쨌든 관계를 계속 맺어가야 하는 사이이고 이왕이면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나, 한 번 두 번 부닺치다 보면 출근하는 길이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보통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욕하는 일은 당위성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을 욕하는 일이나, 연예인들을 욕하는 일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보다는 희열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후배가 선배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욕을 하는 것은, 선배가 선배답지 못하기 때문에, 선배가 좀 더 훌륭한 인격과 뛰어난 업무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욕할 수밖에 없으며, 욕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반면 선배가 후배를 욕하는 일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후배가 못하면 선배가 가르치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며, 욕하는 일은 선배가 관대하지 못하고 못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13년이 넘어가면서 연차가 쌓이고 선배보다는 후배들이 많아짐에 따라 선후배 관계에 대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서 후배로써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보다는 선배로써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선배라는 이유로 꼰대질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나, 내 말과 내 행동이 후배들에게는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차라리 막내일 때가 편했던 것 같다라는 생각도 종종 든다.  직장 생활에서는 모두가 선배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하다. 후배에게는 내가 후배였을 때를 떠올려보고, 선배에게는 내가 선배였을 때를 떠올려보면서 훌륭한 선배이자 훌륭한 후배가 되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 글의 제목이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주어가 2개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글을 쓸때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허세로 인해 그냥 두기로 한다. 시적 허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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