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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Mar 08. 2024

통보남편에서 영구남편으로

다행히 울음을 그친 둘째를 내려놓고

6개월만에 만나는

통보남편이지만

그래도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라


표정 밝게 하고 손가락 빗으로 머리도 정돈하고

아이들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기대감을 가지고 입국장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면서 남편을 찾았지라


그곳엔 분명 아는 사람인 듯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한 너무 촌스러운 동양 남자 한명이 있었으라.

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혔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


바로 그 촌스러움의 극치인 모습의 동양남자가 우리를 보더니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는..


허걱! 이 사람은 코미디 프로에서 익히 보던

'영구 없다 ' 의 그 영구가 아닌가?


머리에 땜빵만 없을 뿐이지 머리스타일은 영락없는 영구.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고 싶었지라..

아니 최첨단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았다는 사람이 이 원시 부족인 같은 꼬라지가 뭐여! 하는 맘으로 복잡한데


"아이들 데리고 오느라 힘들었지!"

하는 할배의 말에

첫날밤 신부가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듯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어색한 미소를 띠며

"어, 잘 지냈어?" 하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눈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서둘러 러기지 찾으러 발길을 재촉했지라 ㅋ


그런 엄마의 허둥대는 행동과는 달리

아이들은 6개월만에 만난 아빠가 그리웠던지 폴짝 폴짝 뛰며 아빠에게 서로 안기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아이들은 기냥 아빠면 되는기라

외모도 입성도 중요하지 않고 그냥 아빠이기만 하면 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고.


그동안 '외모보다는 인성이 최고지!를 좌우명으로 삼고 부르짖었는디 그기 본심이 아니었던 가벼.  폼 이었어라.  똥 폼!

이 작은 사소한 환경에도 흔들리며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걸 보니께.


그리고

사람의 인상에 머리 스타일이 그리 중요한지 새삼 알게되었지라!

4차산업시대가 도래하면 없어질 직종들에 대한 논의가 많이 되는 요즘인데 아마도 미용인 만큼은 세상이 멸망할 때꺼정 절대 없어지지 않을 직종일 것이라 장담할 수 있어라.  로보트가 파마하고 이발하는 걸 아직은 상상할 수 없으니께.

뭔가 새로운 직업으로의 여정을 꿈꾸고 계신가요?

미용인이 되시라!


암튼

될 수 있으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하면서

짐을 찾아 남편의 차에 실었지라.

이때만큼 정신없는 아이들이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는 ㅋ


드디어

남편이 마련해 놓은 아파트에 짐을 풀고

마침내 남편에게

"머리는 그게 뭐야? 어디서 잘랐어?" 물으니

"하하 내 머리가 좀 우습긴 하지.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진거야!" 하면서


당시 옆집에도 홀로 유학을 온 친구가 있었고 둘이서 생활비를 아껴야 하니 서로 머리를 잘라 주자 하고


생전처음 바리깡으로 머리를 자르며 서로의 몰모트가 되었는데

친구가 남편의 머리를 말그대로 쥐파먹은듯이 잘라서 그 머리를 다듬느라 또 깍고 깍고해서 정말 스스로도 거울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암매 그랬을거여!

지금 나도 할배 얼굴 보기가 무셔! 속으로 중얼거렸지라.


아마 요즘같았다면 핸드폰으로 사진이라도 찍어 남겨두었을텐데.. 암튼 하루 이틀 지나 자주 보니 뭐 그런대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처음 보았을때의 그 경악했던 장면은 고스란히 할매 마음속에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아직도 남아있지라.


그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데 더 영구 같아 보여서 얼른 화제를 돌려버렸던 기억과 함께.


지금이야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는 미국에 산다하면 다들 부러워하던 시절이었지라..그 당시 연예인들은 재미교포와 결혼들을 많이 하던 때라 재미교포를 어느정도 성공한 사람들이라 여겼던..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 실상을 알 리가 없었으니께.


직접 와보니 그 이방에서의 삶은 투쟁에 가까운 생존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라.

미드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날으는 원더 우먼'을 보면서 키웠던 소녀의 꿈은 인어공주처럼 물방울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머리를 죄 뜯긴 모습의 할배가 미국 유학 현실로 눈 앞에 떡허니 앉아 있었지라.


게다가 한국에서는 별 문제가 아니던

남자만 셋!

저 머리들을 어찌할 것인가!가 당시 할매 인생의 최대의 난제였지라!


워쪄겄스!

짤라야지!


두 달에 한번 세 남자를 동시에! 의 원칙으로.


목욕탕에 언더웨어..빤쯔 ㅋㅋ..만 입혀놓고 바리깡으로.

처음엔 당연 삐뚤빼뚤에

어떤 때는 바가지 머리에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서 할매는 이발사로 거듭났지라.


지금이야 아들들은 모두 떠나

할매 미용실 고객은 한 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한때는 꽤나 성업중이었을 때도 있었으니

다니던 교회 꼬맹이들도 데려다가 깎아주곤 했다는.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이런 고생 안 했을 텐데..하는 힘 빠지는 생각에 골몰하다가 우울증 올 거 같아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지라.


얼마나 버라이어티 한 인생이란 말인가!

바리깡을 손에 든 순간부터는 내가 왕이다! 으하하하

이쪽으로 머리 돌려!

머리 숙여!

머리를 찝어 놓고도

조용히 해! 하며 모든 주도권을 잡고 명령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께 ㅋㅋ

아이들과 추억도 쌓고

돈도 아끼고

이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해보겠는가!


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할배와 아이들의 머리털이 덥수룩하게 자라오면

할매의 스트레스도 함께 자라 가던 시절이었지라!


바야흐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추억이 되고 그립기도 하지만서도.


그렇다고 이게 할매만의 고유한 추억은 아녀라.

당시 이민자 가정에서 흔히 보는 특별할 것 없는 풍습이었고

고단한 모습인 듯 그러나

한국에 살았다면 결코 해 볼 일 없을

또 하나의 경험치를 쌓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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