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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Mar 01. 2024

통보 남편과 깻잎 짱아찌


건실하고 유망해 보이는 청년이었어라

그랴서 할매가 찜했지러! ㅋ

조건이 그리 맘에 드는 건 아니라서 쪼매 망설였지만 기대가 촉망되는 점이 보여서  결혼을 했지라.

허니 문 베이비로 배가 불러 올 즈음에 박사 시험에 응시를 해서리

부른 배 부여잡고 헉헉대며 뒷바라지했는데..

그런데 결과는 낙방..

그것도 두번이나 낙방을 하고는 코 빠뜨리고 있던 남편 할배..으이구! 그러게 더 가열차게 했어야지! 하는 원망의 속마음을 감추고 위로하는 할매..기특혔지라?


어느덧 아들은 둘이나 생겨불고

박사는 연속으로 물 먹어버리고

그렇게 폐인이 되어가던  할배... 그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아픔이었던(이라고 쓰고 짜증 나던 ㅋ) 그즈음 어느 날 갑자기 할배가 유학을 결심했다고 의논도 아닌 통보했지라.

이별을 통보하고 잠수 타버려 아직꺼정도 놀림을 당하는 어느 연예인보다는 쬐끔 더 낫지만서도 ㅋㅋ

  

할매는 처음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머릿속 계산이 빠른 편이라 벌써 아이들의 미래까지 좌악 그려 보았기에 회심의 미소를 방긋 지으며 어느덧 환영으로 급선회하고 있었지라!


아그들을 영어권에서 키워 올 수 있고, 영어교사였던 나도 영어권에서 살다 오면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은 되겠다 여겼던 것이지라.


약삭빠르게 대처했다고 맘속으로 우쭐했지만 그건 그때 그 나이의 야그이고

지금껏 이방 땅에서 헐떡거리고 살고 있는 할매가 되어 돌아보니께

헛 똑똑이었지라!

지금도

'돌아가야 했어! 돌아가야 했어! 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야 했어!'를 날마다 외치고 살고 있는 불쌍한 할매.


미국 간다고 친정식구들이 횟집에서 거하게 송별식 해주던 자리에서 큰 오라방이 뜬금없이

' 느그들 미국가믄 이제 안 오겠네?' 하길래

할매가 벌컥 큰 소리로

' 절대요! 한국에 철밥통을 두고 왜 안 와요! 백퍼 옵니다!' 하고 반박을 했는디

큰 오라방은 예언가셨지라.

자신의 미래는 그리 모르고 힘들게 사신 분인데.. 역시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암튼

 이후 반년의 준비 끝에 통보 남편은 홀로 미국으로 날아가버렸고

남은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고, 집을 정리하는 등 혼자서 개고생을 하고 드디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라.

아니 몸만 실은  아니라 이민용 가방 6개와 핸드 캐리어 2개 그리고 나와 초등 3학년이었던 큰 아이 등에 백팩 한 개씩 도합 10개의 보따리를 싣고서!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 생각혀도 수퍼 울트라 짱 맘 이여!


큰 아들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기에 불과했는데 당시엔 만 3살 둘째에 비하니 다 자랐다 여겨져서 많은 걸 의지했던 기억이어라. 아들아! 미안혔다!


28년 전 당시는 김포공항에서 출국하던 때였고

해외여행은 커녕 사람들이 비행기 한번 타 보는기 소원이던 때라

때는 이때다 하여 공항 귀경하러

사돈의 팔촌까지 다 와서 작별인사를 하던 촌시런 풍습이었지라. 덕분에

이별의 인터내셔널 에어포트! 영화 한 편을 찍고

아이들 손 잡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사실 어렸을 때

비행기 트랩을 밟고 올라가믄서 미스코리아 맹키로 손 흔들어 보는기 꿈이었는디

뭐 백 프로 똑같지는 않았지만

50프로는 이루었지라 ㅋ


할배의 유학결정 후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큰 아들의 영어학원 등록이었지유. 그래도 1년을 배운 보람이 있었는지 녀석은 미국 여승무원에게 'More bread! Water please!' 같은 쌩 기초 영어였지만 나름 배운 걸 써가며  순조롭게, 재미나게 지내고 둘째도 별 탈이 없이 기내에서 잘 놀아서 다행이라 여겼는데...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면서부터 둘째가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어라. 귀가 아프다는 건 알겠는데 정말 비행기가 떠나가도록 우는 통에 승객들에게 말도 못 하게 민폐를 끼치고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온몸이 쪼그라드는 듯 혔지만서도

실상 할매도 귀가 아팠기에

둘째와 동병상련만 느끼고 있었지라.


승무원들이 물을 가져와 마시라고 했지만

자체 입틀막을 하고 고개를 흔들며 우는 둘째를 데리고 만신창이가 되어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도착을 했지라.

할매는 마침내 귀가 뚫려서 안정을 찾았지만

아직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둘째를 안아야 해서 큰 아들이 할매 몫의 가방까지 끌고 메고..

힘들다고 투정할 만도 했지만 동생이 너무 심하게 우니까 말도 못 하고 낑낑 거리며 가방들을 가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이렇게 내팽개치고 혼자만 룰루랄라 가버린 통보 남편,할배가 참으로 원망스러웠지라. 아니 정말.. 원망을 넘어.. 아름답지 못한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올 뻔..

말투는 이래도 할매는 우아허니께 상스런 말은 못혀요! 정말? 상상에 맡겨 드립니당!


암튼

그렇게 미국이라는 이방의 나라에 첫 발을 디뎠어라.


그리고 헐레벌떡 러기지로 부친 가방들을 찾으러 갔는데...


허거걱..

앞으로 이 이방의 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그 전주곡 되는 일이 생겼으니.


영화 속에서만 보던 그 김포공항 출국장의 주인공이 되어 가족, 친지, 친구들과 안타까운 눈물의 이별을 나누고
이윽고 출국장에 들어서려는데 멀리서 할매 이름을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오는 사람이 있어서 돌아보니 가깝게 지내던 직장선배.
늦어 미안하다면서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건네믄서
“먼 나라 가면 모든 게 다 아쉽고 먹고 싶을 거야. 그래서 깻잎장아찌를 좀 담가왔어”
사실 내키진 않았지만 보고 계시기도 했고

그 맘이 고마워서

빈틈없이 빼곡하게 짐이 차 있어 자리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거의 꾸겨넣다시피 하고 비행기에 올랐지라.


그런데 중간기착지인 애틀에서 대형사고가 터지고  것.
단단히 묶는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장아찌국물이 새서 가방을 넘어 줄줄 흐르는  상태로 내 손에 들어온 것이라.
영어도 어눌한 동양여자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지켜보던 역무원이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가방을 넣어 덕테이프로 꽁꽁 싸매어 주었지라.


학생들 앞에서 그리 잘난 척하며 하던 영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저  할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땡큐, 땡큐! 밖에 없었다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벌게 지니

참! 이여.


그리고 직장선배에 대한 고마움은 저 멀리 사라지고 원망이 솟구쳐 올랐...

'재력도 되는데 줄려면 여비나 챙겨주지 깻잎 짱아찌는 가져와서  이 사단을 만드는 거야!'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기 아니라 했던가 봅니다요.

늦었지만 그때 그 마음 회개합니다요!


이젠 울타리 몰, 한품, 꽃마 usa 등 한국식품들 파는 온라인 배송업체도 많고 한인 대형 마트들도 많이 생겨나

먹거리는 걱정 없으니께

이젠  걱정들 마시고 마음만..으로 부족하다 여기믄 여비 챙겨주셔요 들 ㅋㅋㅋ


아무튼 지간에

리가 하얘지는 경험은 아마도 이때가 인생 처음이었던 것 같고. 그때의 여파 인지 그 이후로 할매 머리가 신속히 백발이 되어간 건 우연이 아닐 거라는 흰소리 한번 하고 다음으로~


간장 국물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라. 그건 한국인이야 무척 사랑하는 냄새지만 타인종들에겐 눈살이 찌푸려지는 냄새라.

김치의 마늘냄새처럼..

사실 알고 보면 들도 마늘 엄청 먹드만..ㅋㅋ


암튼 아찔한 순간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깻잎 장아찌 사건 같은,  한국인이어서 어쩔 수 없는, 그러나 그들을( 미쿡 땅에 사는 다른 인종) 찌푸리게 하는 난감한 순간들은 미국 사는 내내  일상 다반사로 일어났지라.


친정 엄니 만들어주시던  호박범벅은 너무 맛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콩은 너무 싫었던 할매였기에

호박범벅에 콩만 없다면 얼매나 좋을까? 하면서 콩을 골라내거나 안 씹고 꼴깍 삼키다가 엄니 헌티 맨날 혼났는디

이방문화도 그리 쉽게 골라내거나 삼킬 수 있었다면 얼매좋을까마는..


새로운 문화는 호박범벅처럼 군침 흐르는 비주얼로 다가왔지만

어김없이 똬리를 틀고 자리 잡고 있는 콩!

그걸 뱉어버릴 만큼의 거츠(guts, 배짱)가 없는 자들에겐

온갖 인상을 찌푸린 채 씹어먹으면서

울타리를 벗어난 책임을 통감하며 사는 게 이방의 삶이라고 할매 연사는 소리 높여 외칩니다!


암튼

공항에서의 그 황당을 넘어

어디 쥐구멍 없나? 할 정도의 이 깻잎 짱아찌 사건은

다음 도착지인

세인트루이스 램버트 공항에서 통보 남편을 만나는 순간 할매 머릿속에서 싸악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는 만고의 진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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