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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Mar 15. 2024

장벽 그리고 또 장벽 앞에서


타문화라는건 사실 알고 보믄 큰 문제는 아니어라.

사람 사는게 다 똑같은거라

기본 개념은 다를기 없는데

그 뭐랄까..아주 작은 차이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또는 황당하게 만드는기라!

이게 맞는 예 인지는  모르겠지만

각나라의 동물들이 다 울기는 하는데

우는 소리가 제각각이라.


미국 닭은 크 두들 ( cock a doodle doo)

국 닭은 꼬끼오

미국 고양이는 미야우 미야우(meow)

한국 고양이는 야옹야옹

미국 돼지는 오잉크 오잉크( oink oink)

한국돼지는 꿀꿀


사실 한바탕 웃고 넘어가거나 재밌다! 하믄 될 일인데

막상 문화의 장벽앞에 도달하면 왜그리 낯설고 쫄리고 하는 걸까?


아마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아이들 학교보내는 거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요.
물론 대부분 아파트 구하기, 가재도구 장만하기 등이 우선이겠지만 통보..아니 영구 남편이 미리 와서 다 해놓았으니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렇다는 것이라.

먼저 온 유학생들 도움을 받아
school district 에 가서
첫째는 초등3학년에 등록을 했고
3살인 둘째는 며칠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둘째와 같은 또래인 옆집 정현이는 어딘가를 다니길래 물어보니
미국은 3살부터 너서리..이기 한국으로 치믄 놀이방 정도?..를 대부분 다닌다고.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던 때라
모든 정보는 옆집에서 혹은 같은 유학생가족으로 부터 혹은 교회에서가 다였던 시절이었지라.

사실 옛날 야그를 하믄 시방 사람들은  라떼 라떼 하믄서 비웃지만

그 라떼 시절이 리운 건 할매만이 아닐겨!

가난한 유학생들끼리 모여 바베큐 해먹고 잔디밭에서 아그들 뛰 노는 거 함께 보고 하면서 고국을 떠나온 향수를 달래고 돌아갈 품이 있다는 걸 서로를 보며 확인하던 그 때..아, 옛날이여!

다행이
아파트에서 가까운 공립 너서리에 자리가 있어서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3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보낼 수 있었지요.

pre-k 부터는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지만
너서리는 알아서 등하교를 시켜야했어라.
남편은 학생이니 수업을 들어야했으므로
아이들 등하교는 온전히 할매 몫이었지라.

그래도 한국에서 출근까지 하면서 아이들 유치원.놀이방 보내던 것에 비하면 껌이었지만
문제는
그땐 차도 한대였고 나는 아직 미국운전 면허를 따지 못했다는 것이어라.
다행히 남편이 오전수업이 없어서 등교하면서 둘째를 데려다 주고나면  나는 시간맞춰 걸어가서 아이를 픽업하여 다시 걸어오곤했는데.

아파트 가까운 곳이라 생각했지만
걸어서 가보니 만만치 않았고
아직 3살인 둘째를 걸려오는 것도 힘들었지라. 가끔은 이 녀석이 걷기 싫다 칭얼거리믄  업고 오기도 해야했으니께 지금 생각하믄 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비라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오는 것은 괜찮은데 보도블럭 가득 지렁이가 뒤덮혀있어서

지렁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할매가 발을 디딜 데가 없으니 정말 짜증이 나고

왜 이 고생을 자처하고 있는지 유학을 계획한 영구남편인지 통보 남편인지 암튼 그 자가 원망스러웠지라.

괜히 따라왔다 여겨지기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우울증 증세까지 않으니께

할매의 스트레스가 얼매나 컸는지 상상이 가실라나?
그냥 한국에서 아이들과 있을 걸 하는 후회도 들고..

그러다도 둘째가 너서리 기 싫다  하지않고 다니는걸 감사하기로 하자! 스스로 다독이는 등

감정상태가 up and down를 분 단위로 했으니 그리 정상적이진 않았지요.


우울증 증세 이야기가 나왔으니께 그때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한국에서 올 때 들고 온 기 이문세의 첫사랑 이라는 테이프 였어라..지금으로 말하믄 불법 테이프지라.

리어카에서 팔던. 이런거 요즘 사람들은 전혀 모를텐데..암튼 그걸 사다가 테이프 앞뒤로 이문세의 첫사랑만 까뜩 채운거여.

아그들 학교 보내놓고 그 테이프만 주구장창 듣다가 눈물 흘리다가..학교에서 돌아온 첫째가

엄마를 울게 하는 이 테이프는 나쁜거얏! 하믄서

쓰레기 통에 처박은 것으로 그 사건은 끝이 나버렸지만

그 이후로 한참을 질질 거렸다네요.

돌아보믄 내 자신이 참 안스러워서 안아주고 싶네요.


암튼 둘째는 너서리에 잘 다니긴 했지만
아이 놀이수업때 조금 일찍 가서 들여다 보면 무척 짠했어라. 말을 못하니 다른 아이들이 노는 걸 그저 구경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갖고 놀던 것 뒤에 가지고 놀기도 하는 모습에 울컥했지라.
그래도 몇몇 아이들과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손으로 뜻을 전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고
웃기도 하는 걸 보며 구석에 홀로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으니

타 문화속에서

아이도 어른도 그렇게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언어의 문제, 문화의 장벽, 고국과의 단절속에서

어서 벗어나야 하겠지만

이 모든게 시간과 노력이라는 요소의 강력한 작용이 필요하니 날마다가 좌절과 희망속에서

투쟁해야한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무려 이십여년을 영어와 접하고 살았던 나의 영어실력은? ㅋㅋㅋ 웃음만 나왔지라.
실상 미국에 와보니 말은 커녕 잘 들리지도 않았고 반벙어리 신세에 간신히 단어 몇개로 짐작하여  의사소통하는 수준이니 나 스스로 자괴감이 들어 스트레스가 늘어만 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둘째 너서리에서 필드 트립( field trip,소풍)을 간다는 통신문을 받았지라. 부.. 동.반..
그게 미국엄마들과 함께라는, 당연하지만..

그리고
아마 밤새 두통에 시달렸던 것 같으요.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야지.

아침에 김밥을 싸고 물과 음료수, 과일을 준비하고 돗자리가 없어서 싸이즈가 좀 큰 헝겊 냅킨을 준비해서 학교에 가니 노란 스쿨버스가 기다리고있네요. 소풍날은 즐거운 날..할매만 두통에 시달...

모두 조잘조잘 물론 영어로 ㅋ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모든 엄마들이 이불을 한 채씩 들고있는거였지라
아니..소풍에 웬 이불을 가져왔지?
이상한 사람들이야..
뭐 암튼 그렇게 목적지인 공원에 도착을 했지요.



그때부터 나는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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