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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hee Sep 27. 2024

이민자들의 그리움과 생존

지금은 클릭 한 번에 세상을 다 들여다볼 수 있지만

30년 전엔 그렇지 못했기에

이방 땅은 낯설고 물설고

낯선 문화를 터득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때였다.

그러니

떠나온 한국이 너무나 그리울 수밖에..

첫째는 사람이 그립고

다음이 먹는 것이라..


그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이민자 모두의 마음이었을 테고

그래서

가족을 불러들이고 또 한국음식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먹겠다는 의지가 불탔었으리라.


교민들을 보면

형제들도 있고 심지어 부모님들도 가까이 사시는 가정들이 많았다.

우리 같은 유학생이야 단독이었지만..


나중에 우리도 교민이 되었지만 이미 한국이 물질적으로 넉넉해져서 더 이상 이민이 인기가 없어져서 우리는 다른 가족이 없는 외로운 이민가정이 되었고

심지어 지리상 미국 한가운데에 정착해 살다 보니 관광지와는 너무 멀어서 그 성가스럽다는 친인척 방문조차 없다 ㅋ


암튼

의식주에서

다른 건 이방의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큰 불편은 없지만 식.. 먹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김치, 된장, 고추장을 먹고살다가

빵, 우유, 버터, 베이컨으로 매일을 살 수는 없던 초창기 이민자들은 구할 수가 없으니 자체 생산에 들어갔다.

김치는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재료 구하기가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씨를 구해 심기도 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을 유지했던 것 같다.


년 전 이곳에 주재원으로 왔던 Y 권사님은 열무를 구할 수가 없어 여름에 열무김치를 먹을 수가 없자 월마트 야채 코너에서  turnip leaves..

순무 잎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더 질기고 쌉쌀한 맛이 있음...

를 구해다가 열무김치를 담가 드셨다.

가끔 가서 얻어먹으면서 그 솜씨를 감탄했고 그분을 보면서 초창기 이민자들이 이렇게 개발해서 한국의 맛을 만들어냈겠구나 했다.


된장, 고추장도 비슷한 상황으로 만드러 먹다가 솜씨 좋은 교민들은 대량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다.

Baking machine에 찰밥을 넣어 덩어리를 만들고 콩을 볶고 갈아 그 콩가루에 묻혀서 인절미도 만들고..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잠시의 여행에서도 고추장을 싸가는 사람들이 많은 거에 비하면 당연한 일 아닌가 한다.

 그러다가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고 양식이 접목된 멋진 음식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다양한 야채, 토마토, 아보카도와 우동국수를 넣어 새콤 달콤한 겨자소스에 버무려 먹는 냉우동 샐러드가 그중의 하나다.

단연코 교민 작품이고 맛도 뛰어나다.


오븐으로 만드는 견과류가 듬뿍 든 영양찹쌀떡도 LA 찹쌀떡이라 불리우며 오히려 한국에서도 만들어 먹는 걸로 알고 있다.


오장동냉면 쏘스를 비밀리에 구해와서 오장동냉면을 능가하는 맛을 구현해 낸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렇게 개발한 음식들은

주로 교회 공동체를 통해 널리 널리 알려지고

미국의 음식 공유 문화인 potluck 시스템을 통해 함께 나누며 배우며 여기까지 와있다.


유학 온 학생들이 한국음식이 그리워 교회를 찾아가고 그곳의 오랜 교민들이 그들의 한국음식 공급처가 된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암튼

어디서든 맘만 먹으면 생존가능하다는 걸 이민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오지 체험을 굳이 하지 않아도 이민이 오지체험이었던 시절을 뒤로하고 지금은 풍요를 누리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지금은 한국식품 공장이 생겨나고 한국에서 공수해서 먹기도 하여 큰 불편이 없고

심지어 중대형도시에 세워진 대형 한인 마켓.. H-Mart , 롯데 마트, 등에 가면 오히려 한국보다 더 한국을 느낄 수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식재료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어서

30년 전 한국 식품에 목마르던 그때가 까마득하게 여겨지지만.


얼마 전 미국의 큰 식료품유통업체인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가 냉동김밥을 팔면서 한국김밥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뉴스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 김밥을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급기야 일인당 2개로 한정을 하는 진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연이어 코스코에도 냉동김밥이 들어오는 등

한국의 김밥이 급부상을 했다.

그동안에는 일본의 스시로 한국김밥도 스시라 불리어지다가 이제는 당당히 김밥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는지 모른다.


길거리에서 현대차를 보고 눈물짓던 그때가 구석기시대처럼 까마득하게 여겨지게 된 지금이다.

이민자들은 비록 고국을 떠나왔지만

언제나 그 마음 밑바닥에는 고국의 안녕과 번영을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한국사람들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한국의 것들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구화가 너무 빨라 한국고유성, 정체성을 잃어가는 한국을 바라보며

나중에 한국고유의 것을 찾으러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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