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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Nov 01. 2019

손목이 아프다!

예전 같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시시콜콜 문제가 생긴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19. 10. 30


얼마 전, 운동화를 급하게 신는다고 손가락으로 운동화의 뒤꿈치 부분을 당기며 발을 구겨 넣다가 얼결에 손목에 무리가 갔다. 찰나의 일이었기에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강도 높은 고통이 찾아왔다. 그 순간만 아픈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장보는 중에도 무언가에 강하게 찔리는 것 같은 고통이 손목은 물론 팔꿈치 아래 팔부분 안쪽 어딘가에서도 느껴졌다. 근육 다발이 다 아픈 느낌이랄까? 아픔이 상당했지만, 장보기를 멈추진 않았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끄물끄물한 날씨에 다시 나오는 일이 더 싫었던 것 같다. 미련스러운 나!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팔목이 일정 방향으로 꺾일 때 엄청난 아픔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정도의 아픔이었다. 그러나,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손목과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부은 곳도 없었다. 그리고 아픔은 피부 안쪽의 근육일 것 같은 부분에서 느껴졌다. 진통제를 먹었음에도 고통이 상당했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려면 저녁때라 집에서 상당히 떨어진 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다. 예전에 오른쪽 팔꿈치 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아본 경험으로 미뤄보건대, 응급실에서 도움받을 확률은 매우 낮은 증상이었다.


직업상 이러저러한 부상을 자주 겪고 목격하는 친구에게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자, 얼음찜질, 파스, 손목 보호대, 휴식 정도의 방법들을 추천해주었다. 얼음찜질을 두 번 정도 하고는 파스는 잊은 채 둘째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버렸다. 밤에 잠시 깬 둘째를 봐주다가 손목에 찌르는 듯한 강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밤의 어둠은 작은 걱정을 부풀려 두려움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설마 예전처럼 수술해야 하나 하는 근심 덕에 잠이 깬 나는 간호사가 받는 24시간 의료 상담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너머로 지속되는 기다림 안내에 지쳐 간호사와의 통화를 포기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당일 간호사를 만나는 시간을 잡았다. 당일 의사 진료를 잡는 것은 어렵지만, 간호사 판단에 의사가 필요하다면 의사를 볼 수도 있기에 큰 거부감 없이 보건소 갈 준비를 했다. 집에서 보건소까지는 3 km 정도. 아픈 건 팔목이지 다리기 아니기에 팟캐스트를 들으며 운동삼아 보건소로 걸어갔다. 간호사는 어제의 나처럼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는지 부은 곳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더니, 의사에게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한 사항인가에 대한 판단을 묻기 위해 잠시 방을 비웠다. 간호사에게 전해 들은 의사의 견해는 움직임에 무리가 없고 붓지도 않았으니 엑스레이 촬영은 불필요하고, 손목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으니 일주일간 진통제를 먹으라였다.


그럴 줄 알았다. 게다가 팔 하단 부위 전체에 넓게 나타나던 통증도 팔목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여전히 팔목의 움직임에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라게 하는 통증에 혹시나 하는 걱정에 의료진에게서 괜찮다는 설명을 듣고 싶었다. 일종의 위로랄까? 그렇게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온 걱정거리 하나를 덜게 되었고, 나이 먹음에 대한 대처를 상기하게 되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달라지는 느려지는 내 몸을 여유롭게 마주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유독 올 들어, 예전 같으면 별일 없을 상황에 자잘하게 아프게 되는데, 낫는 것도 더디다. 지난여름 끝자락에 검지 손가락 마디 하나를 삐끗했는데, 낫는데 4주 정도 걸린 것 같다. 내가 나를 달래서 잘 살아가야지 누가 나를 달래주고 아껴주겠는가? 그날 밤은 잊지 않고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잤고, 덕분인지 다음날은 통증이 대부분 사라졌다.



찝찝한 꿈에 대한 기억, 그리고... 노화


손목 다치기 이틀 전 악몽을 꾸었다. 누군가와 어느 거리의 5번지를 찾고 있었다. 어느 정도 헤맨 뒤 나와 동행한 사람이 5번지의 문을 잡고 돌리는 순간 문에 붙어 있던 순자 5가 뒤틀리면서 100으로 바뀌었다. 동행에게 집을 잘못 찾은 것 같다며 우리가 왔던 길을 한참 돌아가야겠다고 하는 순간 동행이 잡고 있던 손잡이는 문에서 떨어져 나와 동행의 손에 들려 있었고, 더 이상 손잡이가 아니었다. 동행은 손목이 잘린 손을 악수하는 상태로 들고 있었다. 순간 놀라 깼는데, 잠이 확 깨면서 손목이 잘린 손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았다. 꿈을 세세히 기억할 수 없었지만, 잘린 손의 잔상이 남아 무서워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손목의 통증은 이틀 전 악몽을 상기시켜 한동안 내 마음에 찜찜함을 남겼다. 문득 동행이 잡고 있던 잘린 손이 왼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내가 다친 손목도 왼쪽이었다. 파스의 위력으로 손목의 통증이 작아지자, 꿈에 대한 찜찜함도 사라졌다. 그만하길 다행이었고, 전에 다친 오른쪽이 아닌 왼쪽이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내가 오른손잡이라 다행이었다. 손목을 다친 날 저녁, 그릇을 한 손으로 치우면서 문득 예전에 팔꿈치 인대 수술로 인해 한 손으로만 설거지하던 기억이 스쳤다. 설거지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양손을 자유롭게 쓸 때에 비해 느리고 불편했다. 한 손의 일시적 장애가 가져온 느림과 불편함을 외면하고자 그때의 나는 식기세척기와 로봇 청소기를 구매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화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기면서 노화가 나의 남은 생과 함께 하겠다고 이미 오래전에 나를 찾아왔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손님이 아니기에 외면하고,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럽고 낯설어서 외면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동안 마음과 몸의 엇박자에 당황하고 우울해했다. 10년, 20년 뒤에 지금을 회상하면, 그때 그건 노화 축에도 끼지 않는다며, 좋은 때였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인생의 오르막길을 돌아 내리막 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서둘러 내려갈 필요도 없는 길, 서두르다 넘어지지 않고, 주위 풍광이나 즐기며 여유롭게 내려가는 인생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꾸 앞서 내달려가는 몸을 달래며 느림과 불편함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겠다. 때로는 그 느림과 불편을 기술의 힘으로 극복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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