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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02. 2019

감정의 폭풍우를 만났다.

그렇게 나이를 먹는 건가? 어디서나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그때의 그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어마어마한 파도가 내 마음에 밀려들어왔다. 파도를 넘은 해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갑작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아이들을 재워놓고, 당일치기 출장을 가서 조금은 긴 하루를 보내는 그를 기다리며, 하루를 마감할 겸, 머리를 비울 겸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어떤 장면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전 스무 살의 순간이 떠오르며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너무나 슬펐다. 어리숙해서 늘 우왕좌왕했던 스무 살의 풋풋했던 내가 그립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때의 내가 미치도록 그립고,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절망을 품은 두려움이 우르르 몰려왔다. 생각 못한 감정의 공격에 유튜브 창을 닫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울렁울렁한 마음을 다잡고 그를 기다렸다. 다행히 기다림이 길진 않았다. 그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안정이 되었다.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지만, 그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포근한 그의 품에 안겨 마음을 추스르려 하는 내게 화장실이 급하다는 그... 신발이 불편해서 발이 불편했다고 투덜대는 그... 산만한 그의 귀가는 아찔했던 감정의 파도를 어이없이 부셔 버렸다. 비용을 지불할 테니 지인에게 선물할 샴페인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기에, 샴페인의 가격을 물었더니, 그는 샴페인이 내게 주는 출장 선물이라 했다. 그가 준 선물이니, 지인에게 줄 샴페인은 따로 사야겠다 하자 그는 내가 줄 선물을 그가 사준 게 선물이라고 했다. 살짝 꼬인 듯하지만, 그 다운 배려가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쌌다. 


상상하지 못했던 향수병에 걸린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의 스무 살 시절 풍미했던 노래를 듣게 되면 가슴이 울렁이며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음치라서 노래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그 시절의 노래들은 스무 살의 기억 조각들은 툭툭 소환한다. 젊어서 찬란했을 뿐인 스무 살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더 안정적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 휘청거리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두 아이와 든든한 그가 내 곁에 있고 그들이 채워주는 벅찬 행복이 있는데도, 잡히지 않는 실재하지 않는 내 기억 속의 이미지가 종종 그립다. 외국에 살아서 그런 걸까? 한국에 간다 해도 내가 떠날 때의 한국에서 많이 달라진 지금의 한국은 내가 그리는 한국이 아닐 텐데... 집에 있으면서도 무심코 집이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그 집은 어디에 있을까?


"I think I am homesick."
"But, you're at home now."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쩌다 보니 백수가 되어서 나라는 개인의 사회적 존재감이 없어져서 그런 걸까?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나라는 존재가 많이 희미해진 느낌이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인 것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여기 두발로 서서 존재하는데, 반쯤 투명한 사람이 되어 있는 느낌... 나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어리숙했지만 순도 100%의 나였던 기억을 그 시절 음악을 핑계로 자꾸 불러내는 것은 아닐까? 희미해져 가는 나를 되찾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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