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닮아가는 우리, 기념일도 같이 깜빡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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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 휴일, 친구가 우리 가족을 초대했지만, 친구네 온 가족이 장염이 걸려서 당일 약속이 취소되었다. 내가 붙인 별명, 실내 가족(indoor family)인 우리 (그와 나, 아이들은 아직 발언권이 없거나 매우 약하다.)는 집에서 게으른 하루를 보내기로 합의했다. 늦은 점심 후 (아침을 늦게 먹었으니 무얼 바라나?), 잠시 휴식... 그는 아이들과 오래된 핀란드 전쟁영화 (소련과 핀란드의 전쟁인 겨울 전쟁을 다룬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나는 저녁 재료를 사기 위해, 산책도 할 겸, 혼자서 홀가분히 집을 나섰다. 저녁 메뉴는 간편하지만 온 가족이 좋아하는 할루미 치즈를 주인공으로 한 타파스를 준비해, 102년 전의 핀란드의 독립을 축하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때마침 전자레인지용 팝콘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바게트로 총질을 했다. 보고 있던 전쟁영화 분위기에 맞춘 나의 행동에 그는 잠시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근처에 있던 오렌지를 집어서는 마치 수류탄처럼 안전핀을 빼고 던지는 척을 했다. 이에 질세라 나는 수류탄을 피해 몸을 던지는 흉내를 냈다. 꿍짝이 잘 맞는 우리 참 유치 찬란하지만, 이런 게 사는 재미 아닐까? 투닥투닥 참 많이 싸우는데,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남이 아닌 우리로 살아가도록 힘이 되어준다. 벌써 9년이다.
보통 그가 음악을 선곡하지만, 그전에 내가 유튜브에서 크리스마스 가요를 틀었다. 한국 노래들이라고 하자, 그는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1년에 한 번 정도는 참을만하다고 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게 K-pop인데 무슨 소리냐고 유행을 모른다고 한 소리 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노래는 쓸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게 제격인데, 나의 선곡은 너무 발랄하다며 취향에 맞지 않다는 항변을 하였다. 이런 어둠의 자식! 핀란드 놈 같으니라고... 어쩌면 그는 이 어둡고 긴 핀란드 겨울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도...
독립 기념일에 급하게 적어놓은 글을 정리하다 보니... 우리 9주년 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지나쳤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았다. 감히, 이런! 그는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난 무얼 했을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금 후 아들과 외출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은 그에게 한마디 쏘아붙였으나, 나도 깜빡했으니 비겼다는 그의 말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애들을 재우고, 뒤늦게 9주년 기념으로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광인 그와 같이 애들을 재우고 영화 보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었지만, 이러한 일상들이 우리가 9년이나 함께 하게 해 준 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