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원하는 사람들: 동성 커플, 이혼녀,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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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런던에서 하루살이를 하던 시절이다. 회전초밥 레스토랑 주방에서 주당 평균 20시간을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셰프였던 C는 아담한 체구에 속눈썹이 유난히 길고 곱상한 게이였다. 일본인인 C는 새침데기 소녀 같은 사람으로 전형적인 게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반면 그의 파트너는 게이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 법하게 생긴 40대 초반의 영국인 변호사로 일부 여성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일법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C의 파트너는 몇 번 마주쳤을 뿐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외모 외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여지가 없었다.
C와 적당히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한 나와는 달리, 나보다 먼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내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준 사촌언니와 C는 서로 남자 친구 이야기를 적당히 공유하는 죽이 잘 맞는 수다 친구였다. 덕분에 나는 C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 잊혔지만, 몇몇 이야기는 내게 남아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얼마 전 눈에 띈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 "Co-Parenting Sites Skip Love and Marriage, Go Right to the Baby Carriage"가 잊고 살았던 C에 대한 기억 파편을 끄집어냈다. 기사는 사랑과 결혼은 관심 없지만, 자신의 아이의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온라인 서비스 사이트에 대한 글이었다. C와 C의 파트너는 사랑도 결혼도 이뤘지만, 부모가 되는 게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부모가 되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그 시절 저 서비스가 있었다면 C와 C의 파트너는 부모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C와 그의 파트너는 C의 파트너가 일본에 거주하던 시절 원나잇으로 만났다. 전날 클럽에서 열심히 놀고 마신 C의 파트너가 아침에 집에서 눈을 떴을 때 C가 옆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C의 파트너는 C를 어떻게 만났는지 C가 왜 자기 집에 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C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당시 영어를 전혀 못하던 C는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출근을 해야 했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C를 두고 나갈 수 없었던 C의 파트너는 C가 떠날 때까지 출근을 포기하고 집에 머물렀다. 언어의 장벽 탓에 C는 C의 파트너가 자신이 엄청 맘에 들어 같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더 오래 파트너의 집에 머물렀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되었고, C는 파트너와 함께 런던으로 오게 되었다.
영어를 전혀 못했던 C는 파트너와의 시간 덕에 영어가 (회화만) 일취월장했고, 꼼꼼한 일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레스토랑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함께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래된 동성 부부로 편안해진 C와 C의 파트너는 여느 이성 부부처럼 둘의 삶에 변화와 기쁨을 가져다 줄 아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둘은 입양보다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레즈비언 커플과 함께 부모가 되는 방안을 고려했다. 아이의 친권이나 양육권 등 법적인 사항은 변호사인 C의 파트너가 정리하면 될 일이었다. 2명의 여자와 2명의 남자, 누가 생물학적인 엄마와 아빠가 될지를 정하는 일이 오히려 큰 걸림돌이었다. 두 커플 사이에 어떠한 대화가 오갔는지 세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여러 가지 의견차로 결국 두 커플이 공동으로 부모가 되는 프로젝트는 취소가 되었다.
C 커플의 계획은 비록 물거품이 되었지만, 상당히 신선했다. 애정을 바탕으로 한 관계는 아니지만, 함께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상황을 나처럼 인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의 해결책으로 시작된 사업들이 상당기간 동안 존재해왔다. 앞서 언급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에 따르면 Modamily (2011~)와 Pollentree (2012~)가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랑과 결혼이 없이 자신의 아이의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수긍되는 사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 한국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많이 들지만, 언젠가 그런 사람들을 포용하는 한국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주변에서 마주친 경우가 게이 커플일 뿐 사랑, 결혼 없이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는 둘째를 원하지만 또다시 사랑과 결혼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이혼녀가 Pollentree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조건에 맞는 둘째의 아빠를 찾아 나선 이야기를 다뤘다. 그녀가 찾은 아이의 아빠는 싱글이었다.
웹사이트 기반의 두 회사 모두 기증자를 알 수 있는 정자 기증을 통한 임신이나,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부모로서의 의무만 공유하는 방식이나, 전통적인 방식인 사랑을 바탕으로 한 부모 되기 등 부모가 되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다. 두 서비스 모두 찾는 대상이 다를 뿐 기존의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서비스와 큰 차이가 없다. 입양과는 달리 부모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자신의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다.
아날로그 시절의 친지, 지인, 뚜쟁이, 결혼정보회사 등을 통한 선이나 소개팅, 터미널에서 시작된 채팅을 통한 만남인 번개, 인터넷에서 시작된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서 모바일 데이트 앱까지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들을 찾는 것을 도와주는 도구들은 시대에 맞게 생겨났지만,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삶 전체를 공유하진 않지만 함께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 원하는 누군가의 요구에 맞는 도구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면 두 서비스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