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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09. 2020

같은 반 친구랑 싸웠다고?

싸우면서 큰다는 말도 있지만 치고받고 싸우진 않았으면 좋겠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0. 12. 8


빌마에서 아들의 결석 기록을 확인하다가 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결석 전에 지적을 받은 기록에 상세정보가 눈에 거슬렸다. 수업 끝날 때쯤 반 친구와 치고받고 싸웠고 폭력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훈육을 받았다는 기록과, 점심식사 후 교실에 돌아와서도 싸움을 해서 담임선생님이 중재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에게 결석하기 전 학교에서 아들이 반 친구랑 치고받고 싸웠다고 말을 전하자, 그는 아들과 답답한 대화를 시도했다. 아들에게서 정보를 캐내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이 따른다.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우물우물 작게 대답해서 알아듣기 어려워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한다. 그가 먼저 나선 덕에 한발 물러나 아빠와 아들의 대화를 관전한 덕에 답답함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아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여러 번 대화를 회피했다. 대화의 진전을 위해 끼어들어 떠오르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대었다. 어쩌다 한 친구의 이름을 반복하니, 그가 몇 번 더 그 이름을 반복하면 그 아이가 싸운 아이가 되겠다며 나를 놀렸다. 덕택에 모두가 웃게 된 뒤 아빠의 대화 시도를 추궁으로 받아들여 긴장했던 아들이 조금 편해진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에게서 알아낸 정보를 요약하자면, 놀랍게도 싸움 상대는 여자아이 V였다. 평소에도 남자아이들을 약 올리는 것을 즐기는 V는 고의로 수업시간 말미에 아들의 영어책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곤 아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아들은 이에 선빵을 날렸고, V가 응수하며 치고받고로 발전했다. 영어 선생님이 주의로 싸움이 끝나는가 했지만, 점심시간에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다시 2차전이 발발했다. 이를 목격한 담임선생님이 상황을 파악하고 중재하며 그날의 긴 싸움을 마치게 했다.


우리는 V가 먼저 시비를 걸었지만, 폭력 행사는 옳지 않으므로 둘 다 잘못했으며, 폭력은 피하는 게 좋다는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문득 V의 얼굴이 궁금해진 우리는 매해마다 학교에서 찍는 사진을 찾았다. 아들 반 전체 사진을 꺼내 V를 찾았고, 아들이 어울려 노는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물었다. 내겐 그 얼굴이 그 얼굴인 탓에 아들의 친구들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아들은 사진 속의 반 친구들이 너무 어려 보인다며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아들은 알까? 자신이 매일매일 쑥쑥 자란다는 걸...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아들에게 V가 아들을 좋아해서 시비를 건 게 아니냐고 물었다. 아들은 V는 모든 남자아이들에게 시비를 건다며 내 질문을 부정했다. 남자아이들하고만 어울리는 것 같은 아들에게 종종 아들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는지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는지 물으면 없다고 대답한다. 예전에 (1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아빠한테는 자기가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좀 있고 관심 있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했다고 들었는데, 왜 나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할까? 벌써부터 사생활을 챙기나?



Wilma(소프트웨어)?


빌마는 핀란드 학교 (초, 중, 고등) 정보 온라인 시스템이다. 개인정보, 시간표, 출석, 쌍방향 대화 등을 포함하는 서비스로 교사, 학생, 보호자가 함께 사용한다.


결석 정보는 각각의 수업시간에 대한 상세정보를 기록하는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업에 관한 상세정보는 해당 교사가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있을 경우 단순히 칼라코드를 이용하여 저장하거나, 상세 사항을 덧붙일 수 있다. 


Wilma 수업 상세정보 기록 페이지 화면 캡처


칼라코드 정보

회색: Pay attention in the future, Improper or disruptive behavior, Study tools are missing, Homework without doing

초록: Statement by the guardian / self

노랑: Good

어두운 분홍: For information


반 친구와 싸운 아들에 대해 선생님들이 남긴 기록

1: At the end of the lesson, there was a quarrel with another student, and they both started hitting each other. I interrupted and told both of them that one should not be beaten, even if annoyed. / AmSa

2: The same behavior continued after returning from the canteen. However, the situation was clarified and reviewed. / JoKo


글을 마치며...

글을 쓰면서 빌마의 수업 상세정보 기록 페이지를 캡처하다 보니, 오늘 음악 공책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기록이 눈에 띄었다. 아들과 함께 책가방 챙기는 그에게 말했더니, 음악 공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그가 빌마에서 담임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그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해서 놀랐다. 아들 일에는 쉽게 흥분되나? 그는 담임선생님에게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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