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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an 14. 2021

스케이트용 헬맷이 필요해!

스케이트 타는 딸의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다! 보고 싶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1. 1. 8


스케이트용 헬맷이 필요해!


"어린이집에서 다음 주에 스케이트 타러 간대! 그런데 이번에는 자전거용 헬맷은 안되고 꼭 스케이트용 헬맷을 착용해야 한대. 헬멧 다 거기서 거긴데, 스케이트 몇 번 탄다고... 그나저나 딸에게 맞는 스케이트가 있긴 하려나?"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끼어들었다. 어린이집 알림 메일을 확인한 그가 내게 정보 전달 겸 투덜거릴 겸 말을 건 것이었다. 덕택에 부산하게 스케이트를 찾아 이곳저곳을 뒤졌다. 작년에 딸이 쓰던 스케이트와 아들이 쓰던 스케이트를 찾았다. 더 있을 법도 한데 보이지 않으니, 어찌어찌 처리했나 보다. 스케이트는 딸이 돌아오면 신겨보고 다른 걸 구해야 할지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헬멧! 아들 때부터 자전거용 헬맷을 사용했고, 어린이집은 물론 학교에서도 별말 없었는데, 갑자기 스케이트용 헬맷을 준비하라고 하니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케이트용 헬맷을 고집하는 이유가 나름 있겠거니... 기껏해야 1년에 세네 번 쓸 것 같은 헬맷을 새로 사긴 싫어서 딸에게 맞을법한 스케이트용 헬맷을 찾아 온라인 중고 마켓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분홍색이 좋을 것 같아 분홍색 위주로 찾아보았지만, 옆 도시에서 거래를 원하는 판매자가 주를 이뤘다. 헬싱키에서 거래 가능한 적당한 가격의 사이즈가 맞는 스케이트용 헬맷은 파란색만 보였다. 헬싱키라고 해도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인 데다가 파란색이라 망설여졌지만, 몇 번 쓰지 않을 헬맷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아 판매자에게 구매 의사를 전달했다.


메시지가 오가는 동안 우연히 딸에게 맞을 것 같은 꽃분홍색 헬맷을 발견했다. 게다가 거래지역이 우리 동네 아들 학교 근처였다.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파란색 헬맷은 5유로였지만, 이 분홍색 헬맷은 더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10유로였다. 10유로까지 낼 필요는 없어 보였지만, 진한 분홍이긴 해도 분홍색인 데다가 파란색 헬맷을 사러 갔다 오는데 드는 버스비가 5유로가 넘었다. 게다가 파란색 헬맷을 사려면 왕복 두 시간은 족히 길에서 써야 했다. 파란색 헬맷과 거래 동의를 완전히 한 것이 아니기에 꽃분홍색 헬멧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꽃분홍색 헬멧 판매자는 오늘 구입하러 올 수 있느냐며 빠르게 반응했다. 결국 꽃분홍색 헬맷을 구매하기로 하고 파란색 헬멧 판매자에겐 양해를 구했다. 


구입 전에 딸에게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딸을 데리고 헬맷을 사러 갈까 망설이는데, 그가 어린이집에서 막 돌아온 딸이 피곤해 보인다며 만류했다. 마침 그가 아들과 산책을 가겠다 해서 나간 김에 헬맷을 사 오라고 10유로를 건넸다. 헬맷이 딸에게 맞을지를 가늠하기 위해 그는 딸의 머리 치수를 재었고 나는 딸의 겨울 모자를 건넸다. 그러다 둘이 같이 도달한 결론은 아들의 머리에 맞으면 되겠다였다. 추운 곳에서 스케이트를 타기 때문에 겨울용 비니를 쓰고 헬맷을 써야 하니 아들의 머리 크기가 딸이 겨울용 비니를 쓴 정도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스케이트 타는 딸의 모습이 보고 싶다!


아빠와 아들이 사 온 헬맷은 딸에게 적당한 사이즈였고, 아들이 쓰던 스케이트도 딸에게 잘 맞았다. 스케이트 장비를 구비한 딸은 스케이트를 타러 가고 싶어 했다. 작년에 어린이집 활동을 통해 스케이트를 처음 타본 딸은 몇 번 타보진 않았지만 스케이트를 꽤 잘 타는 편이라 들었다. 처음부터 잘 넘어지지 않고 탔을 뿐 아니라, 두 번째 아이스링크 방문에는 쉼 없이 70미터 넘게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의 연이은 칭찬에 딸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지난겨울 춥지 않은 날씨로 동네에 아이스링크가 생기지 않아 다음 겨울을 기약했다. 집과 떨어진 아이스링크까지 갈 정도의 열정은 내게 없었다. 


핀란드는 겨울에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면 학교 운동장에 물을 뿌려 아이스링크를 만든다. 그런데 겨울에 아이스링크로 쓰이던 우리 동네 학교 운동장은 올여름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그가 인조잔디 운동장을 떠올리며 동네에 아이스링크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운동장 건너편 야외 테니스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을 발견한 나는 마음이 설렜다. 예전보다 규모가 작아지긴 했지만 운동장을 대신한 아이스링크가 있으니... 올 겨울은 종종 가족 모두가 스케이트 타러 가야겠다. 그런데, 훌쩍 자란 아들에게 맞는 스케이트가 집에 없다. 또 온라인 중고 마켓을 둘러봐야 하는구나~ 이번엔 판매자의 위치를 더 염두에 둬야겠다. 그나저나 내가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까? 아장아장 걸을 수만 있는데... 



왜 나에겐 어린이집 알림 메일이 오지 않는가?


아들이 어려서부터 다니던 어린이집은 왠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어린이집 알림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아들이 지금은 딸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 어린이집 자리가 나지 않아 꽤 먼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내게도 알림 메일이 꼬박꼬박 왔는데... 딸이 처음 어린이집을 다닐 때 지금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서 동네 다른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내게 알림 메일이 꼬박꼬박 왔는데... 오히려 아빠에겐 안 보내기도 했던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의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내는 이 어린이집은 내게 메일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상당히 불쾌했다. 비록 메일이 핀란드어지만 내가 엄연히 엄마인데, 왜 알림 메일을 보내지 않는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굳이 나에게도 알림 메일을 보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귀찮아 내버려 두었다. 지금은 오히려 만족한다. 알림 메일을 받지 못하는 나는 어린이집 관련 세세한 사항들을 챙길 의무가 없다. 물론 그가 알림 메일을 확인하고 나에게 부탁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매번 어린이집 알림 메일을 확인하는 수고는 그의 몫이다. 메일을 받았어도 핀란드어니 그가 주로 메일을 확인했겠지만, 아예 확실히 손을 뗄 수 있게 된 상황이라 전혀 불만이 없다. 어쩌다 처음에 누락되었는데, 우리 쪽에서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아서 잊힌 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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