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데 따스한?언니의 냉소가위로가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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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친구 같으면서도 엄마 같은 언니가 있다. 대체로 낙천적인 나와 달리 언니는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이다. 같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언니라는 이유로 언니가 겪은 어린 시절과 막내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이 달라서일까? 우린 자매지만 많이 다르다. 언니의 부정적 시선이 때때로 나의 긍정적 시선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지만, 부정적 의견에 대처할 수 있는 의연함과 긍정적 기대에 부합하지 않은 결과로 겪을 좌절 겪어낼 힘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언니의 냉소가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올 초,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다짐을 생각하는 시기에 문득 지난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봤다. 상당히 열심히 산 시간도 있고, 넘어져 주저앉아있던 시간도 있는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어쩌다 보니 세상은 흘러가고, 나만 고장 난 시계처럼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다. 마흔이 넘은 나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자산도 어느 정도 형성해 자리를 잡으며 노후를 고려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아닐까? 그런데, 난 무언가 하려 하지만, 쉽게 지쳐 주저앉게 된다. 일도 없는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가려나? 이러려면 왜 그렇게 애써가며 유학을 왔을까? 게다가 자산도 얼마 없어 집도 없는데... 도대체 무얼 하며 산 걸까?
멘붕이 몰려와 우울모드를 떨칠 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흔이 지난 지 좀 되었는데, 손에 쥔 게 예쁜 아이들밖에 없는 것 같아 갑자기 슬퍼진다 했더니... '지금 남들은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너보다 많이 가진 것 같지? 몇 년만 지나 봐라. 회사를 나와야 하고 일은 있어야 하니 사업한답시고 일 벌였다가 어그러져서 이룬 거 다 잃을 사람들이 숱하다.' 언니의 말은 내가 먼저 잃은 게 있을지 몰라도 많이 잃은 것도 아니고 다 자신의 삶을 사니 두리번거리지 말고 내 삶에 집중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몇 년만 지나 봐라.' 상당히 냉소적인 말이었는데 내겐 너무나 따스한 위로로 다가왔다.
2월 초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의외로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고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달이 지난 즈음에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내가 대견했지만, 체중에 변화가 미미해서 서운한 맘이 들었다. 말로는 날씬함보다는 탄력 있는 건강함 몸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날씬해지면 좋으니까... 예전과 달리 과식하거나 야식을 먹지 않는데, 꼬박꼬박 땀 흘려 운동하는데, 변화가 없으니 슬프다는 말을 언니에게 전했다. 언니는 내게 위로 아닌 비꼼을 통해 위로를 해주었다. '양심 좀 있어라. 너 살 어떻게 찌웠니? 꾸준히 오랜 시간을 공들여 찌웠으면서 빼는 건? 하루아침에 확 빠지길 바라니?' 살 찌운 시간만큼 살 빼는데도 시간이 걸릴 텐데...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무게 숫자에 연연한 나의 조급함이 조금 사그라졌다.
서운함이 사라지자 한 달여간의 운동 효과를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몸무게가 1kg 정도 줄었다.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고관절의 뚜둑하던 비명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질 체력 때문에 운동에 저항하던 몸이 지르던 비명과 과민반응이 잦아든 것 같았다.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조금씩 나이 지는 것들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운동을 하다 보면 몸무게도 조금씩 더 줄겠지... 과한 기대를 하지 말고 오랜 시간 꾸준히 나를 망쳐놓은 것처럼 꾸준히 되돌리기를 해야겠다. 언니의 애정 어린 비난을 마음에 새기고 도둑놈 심보를 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