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Jun 13. 2022

햇살을 이불 삼은 것처럼 따스한

종종거린 하루 끝자락에 그의 작은 배려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22. 6. 8


급작스레 친구 가족을 초대했다. 가까운 듯 조금은 먼 듯 한 곳에 살지만 늘 옆에 있다는 생각에 천천히 보면 된다고 미루다 보니 영영 미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와 친구는 둘이서 종종 봐왔지만, 친구의 아기가 태어나 10개월이 되었는데도 어쩌다 보니 우리 집 식구들은 아직 친구의 아기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수고스럽지만 모두가 잘 먹을 것 같아 김밥으로 메뉴를 정했다. 1인당 2줄씩 우리 집 네 식구와 친구 부부, 그리고 내 점심으로 1줄, 총 13줄의 김밥을 쌌다. 디저트로 바나나 블루베리 머핀을 구우며 이제 느긋하게 약속을 기다리면 되겠다 싶을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기가 아픈 건 아니지만 엄청나게 소리를 질러대서 약속을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상황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아기가 불편한 거니 어른들이 양보하는 게 당연했다.


그나저나 남는 김밥 4줄은 어쩌지? 그는 채식주의자라 친구 부부를 위해 만든 쇠고기 김밥 4 줄은 온전히 내 몫이 될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연락했지만, 선약이 있었다. 다음날 먹으면 맛이 없을 텐데, 내가 정성 들여 만든 김밥을 잘 즐겨줄 친구는 없을까? 고민 끝에 원래 오기로 한 친구에게 김밥 4줄을 넘겼다.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를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왕복할 적당한 이유라며 설득했다.


종종거림이 끝나니 술이 당겼다. 화이트 와인 한잔을 마시고 나니 핀란드 여름 술인 롱드링크에 손이 갔다. 감자칩과 김밥에 머핀까지 잔뜩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왔다. 김밥이 있으니 식구들 저녁 챙길 필요도 없겠다 싶어 침대로 향했다. 


아련히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며 잠이 살짝 깼는데, 그가 아이들을 다독이며 나를 방해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혼자서 아이들의 이를 닦아주고 잠옷으로 갈아입도록 독려하는 것 같았다. 잠결이었지만, 내가 계속 자도록 한 그의 배려가 따스한 햇살을 이불 삼아 낮잠 잘 때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늦은 낮잠이었기에 결국 밤 10시 즈음 눈이 번쩍 떠졌다. 컴퓨터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있는 그에게 잊기 전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잠결의 나의 기분을 설명했다. 멋쩍어하는 그가 내겐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이런 게 행복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밥 안 준다는 스웨덴 옆 나라, 핀란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