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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Oct 19. 2022

가을 방학: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집

아이들이 없는 집은 절간처럼 조용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2. 10. 18


한국의 학제에 익숙한 내겐 참 뜬금없는 핀란드 가을 방학이다. 손녀는 어리다며 손자하고만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의 할머니가 처음으로 이번 가을 방학엔 아이 둘 모두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셨다. 그와 난 미련 없이 아이들의 할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난 일요일 차가 없는 우리를 배려해서 아이들의 할머니가 남자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러 우리 집에 오셨다. 아침부터 정성 들여 싼 김밥으로 점심을 함께 한 뒤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머니의 남자 친구와 함께 집을 떠났다.


아이들이 떠나자, 평소처럼 특별한 일은 없지만 무언가로 꽉 찬 일요일이 갑자기 한없이 여유로워졌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밤처럼 차분한데, 여전히 낮이었다. 낮인데도 어두워서 밤처럼 느껴지는 우중충한 날씨까지 시간이 뒤틀린 묘한 느낌이 나를 감쌌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히 흐르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이 없는 집은 아침의 부산함이 사라졌다. 느긋하게 일어나는 아침이 좋다가도 좀 쳐지는 느낌이 싫기도 하다. 멈춰진 시간이 억지로 흐르는 것 같다. 절간처럼 조용한 집이 여유롭지만 매우 낯설고 심심하다. 훗날 아이들이 독립하면 이럴까? 


묘한 여유가 좋다가도 아이들이 뿜어내는 번잡함과 싱그러움이 그립다. 아이들의 생기발랄함이 공기를 흐르게 하는데, 아이들이 없어 공기가 차곡차곡 쌓여 나를 누르는 것 같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지만, 지금은 내 아이들이 그립다. 하지만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하는 지금에 충실하길 바란다. 그나저나 그는 조용해서 좋기만 하단다.


차 안에서 (좌), 극장에서 (중간), 경찰박물관 (우)에서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들



그에게 배우는 긍정 화법


김밥을 싸느라 분주했던 나보다 여유가 있던 그는 아이들의 짐을 챙겼다. 아이들의 할머니에게 아이들의 짐에 부족함이 있다면 그를 탓하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그가 무척 서운해했다. 자신의 노력을 무시하지 말라며 그는 아이들이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온다면 자신이 짐을 잘 챙겨준 덕택이라며 나의 삐딱한 말을 고쳤다. 그에게 나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그가 짐을 잘 챙겨준 덕에 아이들이 편하게 지내다 올 것 같다며 그의 노력을 칭찬했다. 이럴 때 그가 유독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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