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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18. 2022

아빠 밥 뺏어먹던 따스한 기억

차게 식은 밥 덕에 아빠가 보고 싶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숙제를 잊고 학교에 간 딸을 뒤따라 나가 숙제를 전해주고 오니 내 아침밥이 차게 식어 있었다. 차게 식어버린 밥을 먹다 문득 어린 시절 아빠 밥을 뺏어먹던 게 생각났다. 이상하게도 내가 뺏어먹던 아빠 밥은 언제나 따뜻했다. 왜 아빠 밥은 늘 따뜻했을까?


전자레인지가 없던 어린 시절, 아빠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엄마는 아빠의 밥을 아랫목 이불 밑에 놓아두셨다. 나는 이미 밥을 먹었어도 아빠가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맛있을 것 같아 늘 한입만을 외쳤다. 막내라서 그랬을까? 유독 내게 다정하신 아빠는 나의 한 입만 요청을 거절하신 적이 없었다. 그렇게 한입 뺏어먹은 밥은 늘 맛있었고 따뜻했다.


내 기억엔 아빠의 밥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따뜻했다. 밥이 식지 않는 게 신기해서 가끔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는 쓰시던 스댄 그릇과 놋수저 덕택이었을까? 아니면 아랫목의 따스함 덕택이었을까? 아련한 기억이 수십 년 전 이야기 같다 싶었는데, 따져보니 벌써 거의 사십 년 전 이야기였다.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었다.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그때 그 시절처럼 커 보이시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든든한 아빠인데, 멀리 핀란드에서 가정을 이뤄 사느라 바빠 자주 뵙지도 못하고 있다. 영상통화를 시도했지만 야속하게도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아빠도 사람이라 늘 좋은 아빠셨다고 할 순 없지만, 따스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거의 다 잊고 살고 있다. 가끔 이렇게 문득 찾아오는 따스한 기억을 핑계로 아빠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날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어쩌다 12월 1일에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덕택에 그때 나의 감정을 떠올리며 이렇게 몇 줄 적게 되었다. 내일은 시간 맞춰 아빠한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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