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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y 09. 2023

나에게 도서관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놀이 장소다!

배경 이미지: 지난 1월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간 헬싱키 중앙도서관 Oodi



기억이 희미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도서관을 중학교 때 처음 가본 것 같다. 도서관 하면 흔히 책을 빌리러 가는 곳이라 여기지만, 내겐 중고등학교 시절의 도서관은 시험공부를 위한 공짜 독서실이었다. 그 시절, 내 기억으론, 내가 살던 도시에는 도서관이 두 개뿐이었다. 두 곳 다 집과 거리가 있어 당일치기가 가능한 시험공부 외엔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다소 번잡스러운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시절 난 독서엔 관심이 없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 없이 대학시절도 도서관과는 거리를 두었다.


서울로 취업을 한 뒤 한동안 책에 푹 빠져 지내면서 도서관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보는 친구 덕이었다. 읽고 싶은 책을 모두 다 살 필요 없이 도서관에서 빌려봐도 된다는 사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을 애용하는 친구와 만남의 약속장소로 도서관 자료실을 애용하기도 했다. 회사 근처에 있던 도서관에 퇴근 후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기도 했다. 정독도서관은 마실 가는 느낌으로 주말에 종종 들렀다. 그러다 한국을 뜨면서 도서관과 거리를 두었다. 


다시 도서관을 마주하게 된 계기는 핀란드에서 아이를 낳고 집에만 머물다가 어느 순간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몽글몽글 떠오르는데, 그 생각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좌절했고, 그때부터 한동안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한국어로 된 책을 보고 싶었지만, 책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어책을 몇 권 구매했다. 책을 계속 사려니 책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도서관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도서관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도서관과 친해지면서 핀란드의 도서관의 색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핀란드 도서관은 조용하지만 적막한 곳이 아니다. 소곤소곤 대화하는 수준의 소음이 허용되는 곳이다. 특히 아동코너는 소리 지르고 뛰는 건 안되지만, 책을 소리 내어 읽고, 그림을 그리며, 아이들과 대화하며 놀 수 있는 곳이다. 동네 사랑방처럼 편안한 소파에 앉아 잡지나 신문을 볼 수도 있다. 회의실이나 스튜디오와 같은 장소를 한 번에 제한된 시간만큼 빌려 쓸 수도 있다. 보드게임이나 게임 CD, 영화도 빌릴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축구공이나 썰매가 대여품목에 오르기도 한다. 


헬싱키에는 37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도서관마다 시설 차이가 있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가까운 도서관에 없는 책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원하는 도서관으로 무료 배달해 줄 뿐 아니라 반납은 아무 도서관이나 가능하다. 게다가 전자도서관 시스템도 잘 되어 있어 도서관에 가지 않고 도서관을 애용할 수 있다. 나는 주로 전자도서관에서 오디오북을 빌려 듣는다.


내가 도서관에 직접 가게 되는 경우는 아이들을 위한 책을 빌릴 때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도 가는데, 그럴 땐 주로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오디로 간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친해져 놀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따스한 느낌의 나무바닥과 환한 조명은 특히 어두운 겨울에 겨울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1층에 있는 체스를 두는 곳 또한 나의 아이들에겐 매력적인 장소다. 그가 아이들이 체스로 어른을 이기면 1유로씩 주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어른과 체스를 둘 수 있어 아들이 용돈벌이 목적으로 좋아하는 장소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조용한 도서관보다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핀란드의 친근한 도서관이 더 좋다. 어린 시절 핀란드의 도서관 같은 곳이 집 근처에 있었다면 독서를 즐기는 어린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게 애쓸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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