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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ep 21. 2023

딸의 슬기로운 모금 생활

아이들 학교의 꾸준한 네팔 학교 지원

배경이미지: 네팔 걷기 행사에 참여 중인 아이들과 학부모들



9월 초 딸이 내게 종이를 내밀며 종알종알 설명을 한다. 네팔 학교 지원을 위해 걷기 행사를 하는데, 후원 약속을 받는 종이였다. 그가 이미 걷기 구간 1바퀴당 1유로를 후원하기로 했는데, 딸은 내게도 후원을 받고 싶어 했다. 살살 웃으며 애교 넘치는 설명을 이어가는 딸에게 하마터면 넘어가 후원을 약속할 뻔했다. 그러나, 단호하게 아빠가 주는 게 엄마가 주는 것이기도 하다라며 추가 후원을 거부했다. 


문득 아들의 경험을 글로 남겨놨던 게 떠올라 브런치에서 아들에 대한 글을 모아놓은 매거진을 뒤적여봤다. 역시! 이 맛에 기록을 남긴다. 덕분에 세월 속으로 희미해져 버린 그때의 상황과 생각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딸과 달리 아들은 네팔 걷기 행사를 하고 나서야 내게 설명을 했다. 글에는 쓰지 않았지만, 내 희미한 기억에 의하면 아들은 네팔 걷기를 하고 와서 내게 앞뒤 자르고 잘 걸었다고 자랑했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나는 그저 잘했다며 그 상황을 얼렁뚱땅 넘겼다. 글은 네팔에 대해 대화하던 부자 덕에 호기심이 발동해 아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썼다. 


딸의 네팔 걷기 행사는 9월 16일,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간혹 학교에서 토요일에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평일 하루를 쉬기 위해 대체수업을 하는 것이다. 토요일 수업이 있을 땐 학교가 학부모의 수업 참관을 격려한다. 수업 참관 기회를 고학년 부모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지만, 저학년 부모들은 다르다. 아이들의 반응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6학년인 아들은 토요일 수업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내기 토요일에 학교에 와야 한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


딸의 토요일 수업은 네팔의 학생들에 대한 설명과 걷기 행사, 점심, 바깥놀이로 구성되었다. 걷기 행사의 처음 한 바퀴는 딸을 따라 걸었다. 한 바퀴 걸을 때마다 담임선생님이 도장을 찍어줬는데, 딸은 도장을 5개 받았다. 딸을 기다리는 동안 딸과 같은 반 아이의 학부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부금을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하긴 기부를 안 하고 걷기만 해도 되고 원하는 대로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 얼마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중에 출장으로 딸의 수업 참관을 하지 않은 그에게 기부금에 대한 고민을 언급했더니, 그가 자기도 처음에는 난감했었다며, 한 바퀴가 엄청 짧아서 아들이 스무 바퀴를 돌면 어쩌나 싶어 한 바퀴당 50센트를 약속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에 1유로씩 기부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나의 기록에 의하면 2유로씩이었다. 기억은 쉽게 왜곡된다. 그나저나 세상은 인플레이션 천지인데 그의 후원 약속엔 디플레이션이 적용되었다니... 딸에게는 이 일을 비밀로 해야겠다.


그에 의하면, 아들은 네팔 걷기 행사에 두 번 참여했다. 그런데 난 왜 한 번이라고 기억했을까? 두 번의 기부 약속을 기억하는 그가 나보단 정확하겠지? 그러고 보니 내 희미한 기억의 앞뒤 다 자르고 자랑하던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때가 아닐까 싶어졌다. 후원 약속을 아빠에게만 받고는 나에게 알리지도 않던 아들과 아빠는 아빠고 엄마에게도 후원을 받아야겠다며 애교를 부리는 딸, 두 아이가 참 다르다. 그래서 제 각각 사랑스럽다. 


딸은 적당히 서둘러서 다섯 바퀴를 돌았는데, 내가 써놓은 글에 의하면 아들은 여덟 바퀴를 돌았다. 딸 반 친구 중 일곱 바퀴를 돌은 아이는 막판에 상당히 숨차하며 뛰던데... 그럼 수년 전 아들은 전력질주를 해서 여덟 바퀴를 돌은 건가? 반에서 도장을 제일 많이 받은 아이가 둘인데 그게 여덟 개라고 했으니, 당시 아들이 미친 승부욕을 불태웠던 게 틀림없다. 


딸은 오빠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후원을 부탁했다. 그리고 20바퀴를 돌면 50센트를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본인도 10바퀴를 돌지 못했는데 뻔히 알면서도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다니 아들의 장난이 지나쳤다. 되지도 않는 요구를 동생에게 하지 말라는 내 경고에 귀가 솔깃해진 딸은 아들의 요구가 불합리하다는 불평을 했다.


네팔의 어린이들의 교육환경이 여러모로 열악해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체험하게 하는 행사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이들은 세상의 불평등을 얼마나 이해할까? 아이들을 지켜본 덕에 나도 한번 더 빈곤과 불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나저나 아들은 걷기 말고 동네 예술작품 찾기를 했다던데... 왠지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다시 캐물어야 하나? 대답이 시원찮던데...


좌: 네팔 걷기 후원 약속 카드, 우: 아이들을 위한 교실인형을 안고 있는 딸
좌: 참관 수업 일정, 우: 바깥놀이시간 원숭이가 되어버린 딸, 봉춤을 가르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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